11월 30일. 정말로 2024년이 딱 한 달 남았다.
오늘은 작정하고 늦잠을 자기로 해서 아주 늦게 일어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감기가 2주째다. 아무래도 마라톤 대회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게 원인이 된 듯하다. 찬 바람을 맞으며 뛰다 보니 목이 부었고, 그래도 인후통은 약을 먹자 금방 나았는데 콧물이 쉬이 낫지 않아 비몽사몽 한 상태다. 조금 더 침대에 누워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왔다. 그래도 한 주에 하루는 달려야 하지 않겠냐!
올해 꾸준히 뛰었고, 2주 전에 드디어 한성백제마라톤 대회에 나가 평소보다 좋은 속도로 10K를 완주했다. 하지만 보다시피 감기에 걸려서 자축도 하지 못했다. 골골 거리는 몸도 몸이지만 날씨도 좋지 않아 달리지 못 한 채 한 주를 보내자 불안해졌다. 달리기를 꾸준히 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뛰다 안 뛰면 몸이 굳을까 불안해진다는 건데, 나도 이제 그런 경지(!)에 닿은건가(?!). 기어이 둘둘 옷을 싸매고 나온 것이다. 기분 좋게 뛰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뛰었다. 오랜만에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5K를 뛰고 돌아와 가볍게 요가까지 하니 묵은 피로가 다 풀린 기분이 들었다.
올해 초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쓴 글에서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릴 날이 올까? 조금 설렌다 “고 한 게 생각났다. 다음 스테이지가 열린 기분이라던 그때 나는 2024년을 “조금 더 뛰어야 할 차례”라고 여겼고 열심히 뛰었다. 주 3회를 3-5K씩 뛴, 활자 그대로도 열심히 뛰었지만 확장된 업무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지난주에 있던 회사 송년회를 통해 함께 수고함으로 올 해도 잘 지나가게 되었다는 안도를 느꼈다.
하지만 과연 나는 잘 뛰었나?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쉬는 일에는 여전히 미숙했다. 여름휴가도 AM9-PM6 일정으로 출근하듯 일어나 나가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있어 여행은 새로운 어떤 곳을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점점 느꼈고, 그래서 친밀한 활동 영역을 벗어나 도심 속을 여행하는 걸 이번 휴가를 정했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울리는 업무 연락을, 무시해도 상관없음에도 기어이 답장을 하며 쉬는 동안의 불안을 상쇄하려 했다. 천천히 걸으며 곳곳을 보며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려 했으나, 머릿속 걱정과 근심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새로운 곳을 가도, 평온한 곳에 있어도 즐겁지 않았다.
설렌다고 하던 마라톤에 대한 기대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저 해야 할 일이 돼버렸다.
나는 나의 N적 상상력을 사랑하는데, 공상과 망상과 이상 중 어디쯤 일지 모르나 그렇게 그려보는 모습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며 삶을 풍성히 만들어주는 듯했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아도 펼쳐지던 수많은 생각이 멈췄다. 예전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올해는 박탈감, 상실감, 그로 인한 불안감이 꿈꾸기를 멈추게 했다. 회사 일은 늘었고, 인원은 줄었고, 엄마는 일 년 내내 여러 병을 돌아가며 앓으며 농담이라지만 자신의 유언을 말했으니까. 하루를 살아가기 벅찼다. 하나 연말이 되니 인정해야겠다. 나는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할 줄 아는 특별한 건 없고,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내가 무언가를 그린다는 게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주 우스운 이유 때문에 내 삶의 원동력을 잃었다.
사랑도 하지 않았다.
MBC금요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생일을 맞은 전현무 편을 보는데, 내 미래가 겹쳐 보였다. 며칠 뒤면 생일인데 올해 나는 누구의 생일을 챙겼던가. 작년까지는 생일인 친구에게 선물을 보냈다. 형식적일 수 있고 누군가는 내게 선물품앗이라고 했다.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게 서로 부담되지 않고 좋은 거라고. 그러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지난 올 해를 보면 생일에 축하한다는 문자나 선물을 보내는 일은 그저 형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늦은 시간에야 뒤늦게 생일을 축하했고 심지어 며칠 지나 축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선물…. 좋아하는 걸 보내고 싶어 이곳, 저곳 사이트를 살피다 삶의 이슈가 치고 들어오면서 놓쳤다. 그 후에는 잊었다. 생일축하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애정 어린 행동이었고, 얼굴 보며 지내지 못하는 서로를 향해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의 좋았던 시간까지도. 곧 봐요, 보고 싶네요 ‘ 건네는 인사였다는 걸 홀랑 놓친 연 말에야 깨달았다. 아주 작은 사랑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한 내가 야박스럽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올해 잘 뛰었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에 만나 함께 10K를 뛰어주었던 마라톤 선생님, 늘이가 내게 준 여러 가지 팁 중에서 ‘대회 시작 전 가볍게 10분 정도 주변을 뛰다 달리면 좋다’ 던 조언이 기억난다. 곧 달려 나갈 거라는 사인을 미리 몸에게 보내주면 스타트부터 편안한 페이스로 뛸 수 있다고 했는데, 2024년 한 달 남은 이 시점에 적용하기 좋은 조언 같다. 뭐든 일어날 수 있고, 이뤄질 수 있는 한 달. 돌아오는 월요일, 회사 아침 예배 기도를 준비하며 어떤 기도를 할까요 물었고, 나의 기도문에는 소망과 희망이, 그로 인한 인내가 담겨있었다. 한 해를 정리하며 기대의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해봐야겠다. 설레며, 사랑을 행동할 2025년을 더 잘 뛰기 위해 오늘의 이 글을 기억하며.
내년에도 나는 아직 뛸 차례인가 보다.
<나는 러너입니다> 글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