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다 우연히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방을 오가며 일 하셨다. 자주 보지 못했던 아빠는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아예 지방에 내려가 근무를 하셨다. 우리 집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 이 편지는 그때 보낸 것이었다.
오글거릴 것 같아 고민했지만, 오래전 보낸 편지를 꺼내 읽었다.
힘든 마음으로 외롭게 일하고 있을 아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몇 차례 편지를 쓰려고 했었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정말 아빠를 응원하고 싶었나 보다. 그 봉투에는 다른 날에 보낸 두 번째 편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지금도 표현이 서툴어 전화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담기에 당시 80바이트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편지를 썼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일기만큼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고민하는 마음이나 쑥스러운 표현을 담기에 편지가 좋았다. 유행가 가사처럼 연필로 썼다 지웠다 하며 천천히 마음을 적어 보냈다.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십 년 만에 발견하면서, 엄마에게 보낸 편지도 따로 서랍에 보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보낸 마음이 누군가의 집에, 공간에, 기억에 있다. 사진도 몇 장 없는 나는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장을 열어 봄으로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서로가 나눈 문장은 그렇게 우리의 지난 시간을 추억하게 해 준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맞춤법은 초등학생 때 실력 그대로 형편없다.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않다. 낯가림이 까지 있어, 예의와 존중받아야 할 서로의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곳에 담긴 글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따뜻한 공감을 일으킬 거라는 기대는 접었다.
아니나 다를까, 글의 초안을 읽은 언니가 내게 왜 글을 쓰는지, 원초적인 질문을 건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냐고. 그러기에 내 글은 너무 무겁다고 했다. 생각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인 줄은 몰랐다며 힘들지 않냐고 또다시 물어왔다. 역시 가족은 날카롭다.
사실 언니가 던진 질문도 익히 해오던 생각이다. 해당 질문으로 써 놓은 글도 있다. 하지만 선뜻 답을 하지 못 했다. 생각도 유기적으로 바뀐다. 아니 자란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듯하다. 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천천히 곱씹으며 편지를 쓴다. 힘들었던 마음은 글로 푼다. 복잡한 머릿속을 글로 정리하며, 내 안을 들여다본다.
브런치에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뒤, 반복하는 생각의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자주 넘어지는 돌부리는 사실 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4년 전에 썼던 글과 2년 전에 썼던 글이 달랐고, 지금 또 생각이 자랐다. 나는 그때 깨달은 생각, 느꼈던 마음, 달라지고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 글을 쓰는 듯하다. 마치 아이가 자라면서 벽에 키를 재고 기록하는 것같이.
이 곳에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을 단어로 적어봤다.
언니가 내게 한 말처럼 무슨 생각을 저리 깊게 할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이 곳에 적힌 글을 읽다 어느 부분에서 공감을 하거나, 위로를 받는다면 그건 내게 행운이다. 기대 못한 좋은 운수.
그런 바람을 담아 조심스럽게 욕심을 부려본다.
당신과 나 사이 글로 남는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
평범한 이의 생각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