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

by 양보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자성어 3가지를 대시오.

이 질문은 평소 생각을 알아보는 심리테스트다. 사자성어 순서대로 인생관/연애관/우정관을 나타낸다고 한다.


'유유상종'. 내가 세 번째로 댄 사자성어다. 그래서인지 학교, 동료 외 인스타그램으로 맺어진 얼굴도 모르는 팔로우들 마저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비슷한 성향이었나 보다.

'고진감래'. 아, 그래서 내 연애가 그랬던 거구나. 이제 좋은 소식이 오겠지. 여기까지는 좋았다.


인생관이 될 줄 알았으면 '일확천금' 이런 걸로 할걸.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사자성어는 '과유불급'이었다.

새벽 요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효리가 지은에게 고민을 물었다. 지은이는 평정에 집착한다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들뜬 기분이 들면 통제력을 잃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안 좋다고 덧붙였다. ¹ 나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되돌려 봤다.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그녀가 한치 오차도 없이 말한 게 신기해서.


나도 그녀처럼 들뜬 기분이 들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붕 뜬 그 기분은 통제력을 잃게 만들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유발했고, 주변을 살피는 예민함을 뭉특하게 만들었다. 물론 가라앉는 기분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이 축나면 몸에 바로 티가 나는 심약한 몸뚱이라 가라앉는 기분은 그대로 힘들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틀을 깼다며, 성장한 스스로를 내심 기특히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특히 여긴 변화도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티 나지 않게 같이 웃고 떠들고 소란스러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헤치지 않을 딱 그 정도. 뭐 이 정도도 엄청 발전한 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속에서는 계속 무게 중심을 0에 맞추려고 했다.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억지를 부리며 관계 속에 있으니, 피로함이 커질 수밖에...


흔히들 피로한 관계는 정리하는 게 요즘을 사는 지혜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반대쪽이라면?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피곤하게 하는 거라면? 나는 내가 소유하려고 한 평정에 대해 되돌아봐야겠다는 필요를 느꼈다.


결국 평정을 향한 집착은 우습게도 부자연스러운 애씀을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정적인 삶을 산다고 해도 하루에 한 가지 일만 생기지 않는데,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생기는 감정에 수를 메기다 보니, 스스로를 기복이 심한 요란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고 자꾸 감정을 통제하려는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없고, 어딘가 모르게 어려운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평정에서 나를 놓아버려 엉뚱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게 될지라도, 그것이 우리 사이 흐르고 있는 감정의 파도라면 함께 타야 즐겁다. 어떤 사람이라는 말에 나를 가두지 않자, 나는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나를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지금도 거대한 감정의 파도 속 보다, 백사장에 홀로 앉아 있는 게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 나를 가두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맛보았기에 평정을 향한 '집착'은 내려놓으려고 한다.

정녕 ‘과유불급’이 인생 모토라면, 과함에 대한 경계도 적당히 해야 하는 게 맞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사자성어는 '과유가능'으로 바꿔야겠다.



¹ JTBC <효리네 민박 시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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