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중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 자진해서 야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가며 회의를 진행했고, 행사를 기획하며 고객 만족에 힘쓰던 그때를 생각하면 반짝반짝 빛난다.
스물 후반, 서른 초.
감당할 수 없는 업무 양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었다. 열이 펄펄 끓어도 출근을 해야 했고, 서둘러 미팅 장소로 이동하다 계단에서 굴러 다리에서 피가 흘러도, 회의를 마치고 병원에 갔던 날을 생각하면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하지만 그만큼 해냈다는 뿌듯함에 벅차기도 했다.
서른 중반.
별일 없는 게 별 일이라는 말과 회사에는 선한 게 없다는 농담을 진지하게 뱉는 요즘. 익숙해진 업무에 체감 상 일이 줄어든 것만 같은 하루를 멍하게 보낸다.
언제부터인가 지난 동료를 만나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다, 과거 우리가 경험한 일을 회상하느냐 바쁘다.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서 할 이야기가 많은 그때는 참 즐거웠다. 성취로 가득했던 시간은 그대로 삶에 자부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룬 게 없어 보이는 정적인 지금을 죄책감과 실패감으로 물들였다.
치열했던 과거에 비해 현재 나는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매일 나를 잠식시킨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옛날에 내가'라고 말하면 꼰대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과거의 나와 비교해가며 현재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는 마당에, 그때 삶은 성공만 있고 지금은 실패만 있다는 듯, 내 삶을 기만하고 있었다.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영광이든, 자책이든 모두 흘려보내 주는 게 맞겠다. 무엇보다 과거처럼 열심히 살고 있는 거라고 말하기 위해 코피를 쏟고, 링거 투혼을 한다면 이제는 보름 정도는 입원해야 할 저질 체력이 되었다.
열심에 대한 정의마저도, 과거의 것은 흘려보내 줘야지. 실패자라고 속이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오늘 내가 만들 현재의 영광에 열심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