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by 양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오는, 그런 날이 있다.


책상에 앉자마자 걸려온 전화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체 일을 시작하게 했다. 쏟아지는 전화와 메일 속에 간신히 정신 줄을 붙잡고 있지만, 배려 없는 재촉은 화장실 갈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매일을 성실하게 일해도 마감 시간은 언제나 촉박하다. 점심도 거르고 일을 하지만 수정 사항은 줄어들지 않고, 숨 쉴 틈도 없이 일해도 나보다 더 빠르게 일거리는 증식되어 쌓인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죽지 않기 위해 퇴근을 한다. 그렇지만 머릿속에는 일에 대한 염려, 불안이 멈추지 않는다. 퇴근을 해도 일 하고 있는 기분. 차가운 밤공기에도 숨이 막힌다.


이렇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날이면 나는 종이를 꺼낸다.

보통은 우선순위를 정해 일을 정리한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로 내일 해도 되는 순서로 일 목록을 작성한다. 성격이 급해 모든 일을 빨리, 오늘, 당장 하려는 성질 머리를 꼭 잡고,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날짜별로 분류해 나름의 데드라인을 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정한 마감일이 실제 마감일보다 훨씬 이르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일은 빨리하면 사라지지 않고, 더 많은 일로 돌아온다. 돈에 휩쓸리지 말고 주인이 되라고 하던데, 일 한테도 내가 주인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룹니다'는 말로 퇴근을 한다. (이 말을 대표님이 싫어합니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로, 나의 쉼을 챙긴다. 일에 밀려서 챙김 받지 못하는 나를 챙기는 일에도 '오늘의 분량'이 있다. 그러니 급할 때일수록 돌아가세요. 오늘의 일은 내일로. *악용 주의*

이전 09화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