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처음 대상포진에 걸렸다.
사회생활을 한 지 6년 차였다.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못해도 다섯 곳이 넘는 회사를 거쳤다지만, 당시 다닌 회사에서 비로소 세상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로 수만 가지의 맘고생을 했다. 일도 일이었지만 상사가 주는 감정적 스트레스는 몸을 망가트렸다. 살이 쑥쑥 빠지더니만 결국 대상포진에 걸리고 말았다.
모두가 한 입으로 쉬어야 낳는 병이라고 했지만 병가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지랄 맞은 성격이 병가 내는 걸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고생하는 게 싫었다. 바보 같게도 얼마큼 아파야 병가를 내도 좋은 건지, 그런 걸 따지고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통증이면서도 기어코 회사에 나와 일을 했다. 하지만 며칠을 가지 못 하고 병가를 신청했다.
회사는 아프다면서도 나와있는 나를 보며 생각보다 괜찮다고 여겼나 보다. 병가를 신청하는 내게 의사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만 섭섭했다. 평소 작은 규모의 회사라는 이유로 직원들의 요청은 가볍게 넘어가던 회사가 이럴 때만 체계와 규칙을 운운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어렵게 병가를 쟁취했지만, 일에 대한 염려로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결국 그때 남은 신경통으로 현재까지 고생 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좀 쉬라고, 제발 좀 쉬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일이나 사랑에 관해서 설명하는 책은 많다. 대중의 관심이 많은 분야고, 그래서 연구도 많이 이뤄진 까닥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쉼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다. 과로 사회가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쉼이란 그저 일하지 않는 나머지의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쉼을 생각하면 여행이나 특별한 순간이 떠올려진다. '리프레쉬', '힐링'이라는 단어들이 호텔과 여행 광고에 등장하면서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외적 에너지가 적은 내게 여행이야말로 큰 '일'이다. 출발하기 전에는 계획을 세우느냐 바쁘고, 떠나서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예상치 못한 일에 대처하느냐 큰 에너지를 써야 했다. 모두가 쉬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제안하는 여행이 결코 내게 쉼이 되지 못했다. 먹는 일에도 특별한 애정이 없는 내게 몇 시간씩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맛집 투어도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내가 깨우친 쉼이란, 사람마다 추구하는 모양이 다르며, 몸보다 '마음의 안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찾은 내게 맞는 쉼은 일상 속에서 적당히 무언가를 하는 것.
아무것도 안 한 채 누워만 있으면 좀이 쑤신다. 정신적으로 컨디션이 저조한 날에는 죄책감마저 든다. 그럴 땐 몸을 움직인다. 설거지를 하거나 정리정돈을 한다. 노동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그래서 자연스럽게 목표 설정이 되는 뜨개질이나 컬러링 북은 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쉼은 걷기, 산보다. 주위 사람들의 필요나 반응에 예민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찾는다. 예전에는
카페에 머물렀는데 요즘은 걷는다.
날이 좋은 낮에는 커피와 책을 들고 뒷산으로 가, 잘 갖춰진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조금 더워도 에어컨보다 자연 바람이 좋다. 스치는 바람과 새소리, 간간히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는 아주 좋은 백색 소음이 된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불필요한 생각이 사라진다. 날이 저무는 저녁에 나서는 산보도 좋아한다. 그럴 날엔 석양이 잘 보이는 큰 사거리까지 걸어간다. 적당한 움직임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모든 게 여의치 않을 땐, 퇴근길을 조금 돌아오거나, 점심을 먹고 한 바퀴 돌고 들어온다. 해와 하늘을 본 것뿐인데, 기분은 충분히 바뀌어 있었다.
경쟁에 익숙해진 이 세대는 쉼도 배워야 할 영역이 되어버린 듯하다. 방학이나 휴가를 보내고 오면 어딜 갔다 왔는지 묻는다. 외국으로 갔다 온 사람의 쉼은 대단해 보이고, 별 일 없이 집에 있었다면 시시하게 보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안타깝지만, 일찌감치 자신에게 맞는 쉼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어떻게 쉬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