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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_0107

퍼플아티스트의 답문



  안녕하세요, 20210226_0107 님 :)

  오늘은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어요?




  21살 무렵 다리에 종기가 생겨 갑작스레 수술한 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5분이면 갈 수 있던 거리가 지팡이를 짚고도 1시간이 걸릴 정도로, 하루아침에 거동이 불편해졌지요. 내딛어야 하는 한 번의 걸음이 그토록 괴로울 수 있다는 건 살면서 상상해본 적도 없었어요.


맹신하던 젊음과 건강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배우던 그때. 화장실조차 자유로이 오고가지 못하던 그때. 사실상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건 '자유와 존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절망의 느낌이 어찌나 깊이 새겨졌던지 방문 닫고 이불 뒤짚어 쓴 채 하염없이 울던 순간,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빛과 창틀의 그림까지 지금도 사진처럼 선명합니다.


아마 당신은 이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셨겠지요. 21살 무렵이 저에게는 손에 꼽을 만큼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냥 죽는 게 낫겠어'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기에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했을 당신의 순간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간들을 버텨온 당신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쾌차해서 우리가 마주 앉아 소통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다'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지만, '괜찮다'는 표현이 그저 듣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자 습관처럼 표현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몸은 아파서 힘들었지만 이런 시간이 있어서 좋았던 거 같기는 해요' 이 한마디를 표현할 수 있기까지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감정 사이를 오고 간 당신이겠지요. 갑작스러운 입원이 당신에게는 사색과 독서의 시간을, 저에게는 건강에 관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기회가 되어주었기에 우리에게는 '좋았던 것'이 확실한 듯 합니다. 우리가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보내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자랑스럽기도 해요. 


다만 앞서 염려를 표했던 것은 문득 '그때 힘들었고 지금도 괜찮지 않다'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어요. 어찌보면 제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저는 '괜찮다'고 습관처럼 표현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어린시절부터 상대의 상태를 살피고,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몸에 밴 저였기에 '괜찮지 않다'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마음속에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 정도였어요.


지금 내 상태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그래도 순간 순간 노력하다보니 '감정에 솔직해도 생각만큼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믿음이 쌓여 어느덧 '지금 나의 감정'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한결 편해진 듯 합니다.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울만큼 관계에 대한 욕구가 컸다던 당신이기에 저의 이야기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이 아닌, 응원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당신이 건네준 이야기를 들으며 입원해있던 기간동안 당신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삶, 관계, 죽음. 이 모든 것에 대한 생각과 열정이 크게 변화한 당신. 그 성장과 이야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퍼플아티스트와의 인터뷰를 퇴원 후 첫 일정으로 선택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죽음을 그리는, 퍼플아티스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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