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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Apr 30. 2020

코로나19가 퍼지면서 휴지 대란이 일어나는 이유

코로나 사태의 경제학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에 걸렸다.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코 앞에 다가온다.


5천만 명이 사망한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규모 위기. 어쩌면 경제 상황은 102년 전 보다 훨씬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한국과 중화권 국가들(또는 지역들)은 급한 불은 끈 듯 하지만 언제 다시 2차 쓰나미가 몰려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 봉쇄(Lock Down)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수두룩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전 세계가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마트로 미친 듯이 달려가 물건들이 품절되는 현상. 다들 뉴스에서 한 번쯤은 보거나 읽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유별나게 품절이 빨리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든 물건. 바로 생필품 중에 하나인 "휴지"이다.


http://tbs.seoul.kr/news/newsView.do?typ_800=4&idx_800=2388009&seq_800=10381179 


도대체 왜 사람들은 뉴스 발표 직후에 마트에 미친 듯이 달려간 것일까? 다른 것도 아닌 왜 하필 휴지가 매진된 것일까? 이 사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마트에 달려가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모두가 진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매진되는 물건도 없고 아무 문제도 안 생길 텐데 왜 저러지?"라며 마트에 달려가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필자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마트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나중에 사야 할 게 있을 때 물량이 부족해서 살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도 부분적 락다운이 시행됐을 때 정부 공식 발표 중 제발 사재기하지 말라는 언급이 있었다. 생필품이 품절이 돼버리면 정작 필요한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스크처럼 말이다. 마트협회에서는 물량이 부족해지는 일은 절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무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바로 Chicken Game (겁쟁이 게임)이라는 게임이론 (Game Theory)이다.  


출처: KMA 한국 능률 협회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치킨 게임은 아래와 같은 특성으로 갖고 있다. 아래 매트릭스도 참고하자.


특정 상황에 있어 서로 협력하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서로 6점씩 얻는다),


1) 상대가 배신할 경우, 나는 잃는 게 크다 (2점 밖에 얻지 못한다). 
2) 상대가 협력할 경우, 나는 협력하지 않고 배신할 때 얻는 이득이 조금 더 크다 (나는 8점을 얻는다). 


다 같이 사재기를 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마트에 가기로 협력하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1) 다른 이들이 사재기를 할 경우, 나는 물건이 품절돼 필요물품을 마트에서 살 수 없게 될 수 있다.
2) 다른 이들이 필요할 때만 가기로 할 경우, 내가 배신하고 사재기를 하면 앞으로 품절될 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출처: Jens Eisert


그래서 결국 우리는 대부분 협력(Cooperate) 보다는 배신(Defect)을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힘겹게 줄 서지만 생필품들을 제대로 구매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협력한 사람과 배신한 사람 모두가 피해 보는 제로섬 (Zero Sum) 게임이다.


결론은, 마트 사재기 현상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휴지"인가. 많고 많은 생필품 중 하필 휴지가 품절되는 현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1. 휴지에는 대체재 (Substitute)가 없다


생필품들의 성질에 대해 알아보자. 생필품은 경제적 형편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생존과 기본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품 들이다. 하지만 생필품이라고 해서 전부 대체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품절 대란 중심에는 라면도 있었다. 한국인은 "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람은 일반적으로 쌀이 없다면 빵이나 국수를 먹으면 된다. 닭고기가 없으면 돼지고기를 먹으면 되고 생수가 없으면 수돗물로 보리차 끓여 마시면 된다. 하지만 휴지는 다르다. 대체할 만한 물품이 없다. 비데가 없는 집이라면 더더욱 인간의 배변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화장실 뿐인가? 청소할 때나 코를 풀 때, 생각보다 휴지는 정말 자주 쓰이지만 대체할 방법이 없다.



2. 휴지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물론 휴지도 제조품인지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면 질이 상당히 저하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이나 쌀과 같은 음식이나 식재료에 비해 휴지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필자 또한 재택근무를 위해 마트 사재기에 동참한 경험이 있는데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 웬만한 식재료는 사재기는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야채, 과일, 고기류는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대량으로 구매하기 어렵고 사재기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냉동식품이나 통조림류였다. 치약 칫솔도 꽤나 오래 쓸 수 있는 물건들이라 이미 집에 충분히 쟁여두었고 당장 사서 쟁여 둘 만한 것에는 휴지 밖에 없었다.


3. 휴지는 구매 욕구를 일으킨다


마트에 가면 휴지는 최소 12개씩 묶음으로 판매한다. 다른 생필품들에 비해 부피가 크고 가볍다. 생각보다 사재기할 만한 물품들이 많지 않은데 쌀이나 생수는 너무 무겁다는 게 흠이다. 그러기 때문에 휴지를 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에는 휴지의 부피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에도 있다.


부피가 크다 보니 마트에는 휴지 코너가 정해져 있는데 휴지 코너에 도착하는 순간 다른 코너에 비해 텅텅 비어 있는 느낌을 확 받을 수 있다. 다른 코너에 있는 물건에 비해 월등히 많은 개수가 팔린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피 크기 때문인지 인기 물품이라는 "착각"아닌 착각을 하게 된다. 이때 자연스럽게 드는 소비자의 생각. 


"아 휴지 곧 매진되겠구나. 무조건 사야겠다." 심지어 가격까지 별로 안 비싸니 사야지. 그렇게 휴지는 소비자 경험 (Customer Experience)로 인해 빠르게 품절된다.

   

4. 휴지가 품절 대상이라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 예상할 수 있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휴지 품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언론을 통해 코로나19의 초기부터 많이 접했다. 아마 그 소식을 들으면서 의아해하는 동시에 "아 우리나라도 사태가 심각해지면 휴지가 가장 먼저 매진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품게 됐을 것이다. 다른 물품들에 비해 휴지는 이미 품절이 예측되는 확실한 물품이었다. 마트에 달려간 소비자들은 당연히 휴지를 제일 먼저 집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식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 사는 것처럼 말이다.



재난 상황에 마트 사재기와 휴지 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합리적이다.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돌림병 재앙을 처음 겪어 보는 우리들에게는 마치 재난 영화에서나 볼만한 신기하고 긴장되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냥 영화에서 본 장면대로 따라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 같은 상황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다. 빌 게이츠가 말했던 것처럼 인류 최대 위협은 핵이 아니라 바이러스 일지도 모른다.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는 더 철저히 준비하고 이런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loSiCHzA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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