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의 경제학, 그리고 사회적 비용
"구독과 좋아요, 알람 설정 까지!"
언젠가부터 "구독"이라는 단어가 우리 눈에 자주 띄기 시작했다. 유튜버들이 콘텐츠의 시작과 끝에 구독을 부탁하는 멘트를 덪붙이는게 유행하면서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해졌지만, 사실 유튜브만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의 팔로우(follow), 페이스북의 좋아요(Like), 그리고 유튜브의 구독(Subscribe). 단어만 다를 뿐 비슷한 용도로 사용된다. 관심 있는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올리는 채널이나 페이지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버튼 하나로 유사 콘텐츠를 "정기 구독" 할 수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기구독"이라는 개념이 온라인에서 보편화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구독
[명사]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
구독의 본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나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개념이긴 했다. 아침마다 현관문 문고리에 걸려있었던 주머니 속의 1리터 서울우유. 그리고 등교할 때가 되면 발견했던 현관바닥에 던져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학교 가면 친구들이 투덜투덜 거리며 극혐 했던 배달 학습지. 매달 돈을 내고 주기적으로 배달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서비스는 항상 필요하지만 대량 구매로 쟁여 놓기 어려운 물품들을 매일 따끈따끈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점에 있어 매우 유용했다. 판매자 입장에서 또한 소비자가 다른 경쟁사 제품을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의 제품을 장기간 꾸준히 구매할 수 있도록 묶어 두는 방법이었기에 여러모로 윈윈이었다.
이렇게 구독형 사업은 오프라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구독형 비즈니스가 온라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구독"의 영역이 "제품"에서부터 "서비스"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판매의 영역이 더 이상 유형 제품뿐만이 아닌 콘텐츠로까지 확장이 되면서 콘텐츠 시장의 특징이 두드러나기 시작했다. 형태가 있는 유형 제품들은 개인이 소유하고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반면, 콘텐츠로 분류되는 제품들은 한 번의 경험으로 소비되면 큰 의미를 잃게 된다. 그렇기에 유형 제품들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방대한 양이 필요로 하며 소비자들은 항상 더 새롭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요구한다.
음악, 영화, 책, 만화, 그리고 게임까지. 전부 길면 몇 시간, 짧으면 몇 분 안에 소비된다는 특징이 있어 낱개로 하나하나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또한 주기적으로 배달받기에는 매일매일의 수요가 다르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성공의 표본이 바로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단순한 비디오 렌털 서비스에서 온라인 구독형 비즈니스로 전환한 케이스인데 콘텐츠 열람 횟수에 따라 가격이 제한되었던 기존 모델과는 달리 꽤나 파격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바로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열람할 수 있다는 것. 불분명했던 온라인 구독 모델은 넷플릭스의 성공 사례로 인해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음원시장, 게임 시장을 넘어 이제는 유형 제품을 판매하는 패션업계에서까지 구독형 모델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나이키는 올해 아동 신발 정기 구매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구독 모델의 인기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구독 모델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업계는 다름 아닌 소셜미디어다.
앞서 다뤘던 제품형 그리고 서비스형 구독 모델은 소비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이지만 소셜미디어 업계에서의 소비자는 대체로 그 어떤 금전적 비용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도 손쉽게 버튼 하나로 구독하고 취소할 수 있기에 구독자를 늘려가는 데에 있어 보다 훨씬 자유롭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소비자와 제작자 외에도 제삼자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바로 광고회사들이다. 사실상 소셜미디어라는 콘텐츠 플랫폼에서 광고주들과 소비자가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구독자가 많은 콘텐츠에 더 값비싼 광고가 들어서고 콘텐츠 제작자는 더 많은 광고수익을 얻게 된다. 소비자는 그 어떤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광고업체는 광고 노출의 대가로 플랫폼 자릿세를 지불한다.
일반적인 거래에서는 소비자와 판매자 양측에 마땅한 책임이 부여된다.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개인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고민한 후 신중히 비용을 지불한다. 제작자는 자신의 콘텐츠가 좋아야 꾸준히 소득을 얻기 때문에 지불한 값에 마땅한 퀄리티를 제공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조금 복잡하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소비자에게는 비용의 책임이 없기 때문에 소비를 신중히 할 필요성을 잃는다. 금전적인 제한도 없기 때문에 구독 횟수를 늘려가는데 한계 또한 없어 그 어떤 업계의 소비자들 보다도 유연하게 소비를 비용 없이 늘려 갈 수 있다.
콘텐츠 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광고주로부터 수익을 창출해내지만 거래의 대상은 콘텐츠 소비자들이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의 구매력이나 비용에 대한 정당성에 집중할 필요 없이 오로지 그들의 만족에만 집중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어떤 업계보다도 이상적이고 자유로운 생태계가 아닌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의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켰다. 큰 빛을 보지 못했던 창작의 영역이 콘텐츠라는 영역에서 활발히 소비되면서 예술가들과 아티스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BJ, 유튜버,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등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 보다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들이 만들어졌다. 구독자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제는 현시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비자들을 공감해주고 즐겁게 하는 콘텐츠들도 늘어났지만 지식의 영역을 자극하는 콘텐츠 또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소신 발언과 정치적 성향, 철학 등 자신의 주관을 스스럼없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넘쳐나는 지식채널들과 시사채널들까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밌고 쉽게 우리의 지적 목마름을 달래주었고 어느 순간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세상의 넘쳐나는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도 의지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나 유익하고 이로운 플랫폼에도 허점은 있다. 바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구독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제작자의 수익 원동력은 콘텐츠를 꾸준히 소비하는 구독자이다. 그들은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구독자 수만 늘릴 수 만 있으면 된다. 콘텐츠의 방향성은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들 보다는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정보들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구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콘텐츠들은 만들어지고 소비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들만 접하게 된다.
소셜 미디어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구독 모델의 핵심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필터링할 수 있다"는 부분에 있다. 소비자인 동시에 비용을 지불하는 구매자인 일반적인 소매시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정기구독의 의미가 있었다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만을 볼 수 있다"에 구독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관심이 없는 콘텐츠는 깔끔히 필터 해주는 플랫폼 속에서 우리는 간편하고 쉽게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지고 어느 때보다도 이곳에서 얻는 정보를 신뢰하게 되면서 우리도 모르게 큰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곳의 콘텐츠가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원치 않는 것들이 넘쳐난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 재미없는 이야기들, 관심 없는 뉴스들, 배우기 싫은 과목들. 현실에서 마주하기 싫었던 이 모든 것들은 소셜미디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만큼은 "구독" 버튼 하나로 걸러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성이 존중받고 표현의 자유가 최고점을 달리고 있는 이 현시대에 우리는 온라인 세계에서 여러 가지 사회 갈등을 목격할 수 있다.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갈등, 남녀 사이의 젠더 갈등, 정치적 다름으로 인한 이념갈등까지.
예전보다 정보를 접할 기회도 더 많고 교육의 수준도 올라가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는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사회가 열광하는 구독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어 갈 수 있지도 모른다. 구독 모델은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보고 싶은 것 만 보고 또 믿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구를 비추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구독 모델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만을 노출시킴으로써 마치 보이는 그 정보만이 현실인 것 마냥 우리를 착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렇게 편향된 정보만으로 세상을 배우고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사회적 갈등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구독형 서비스는 그 어떤 때보다도 자유롭고 다양한 제품과 콘텐츠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비용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 소셜미디어에서 만큼은 우리의 시야를 좁히고 갈등을 부추긴다. 이런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분별력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사회에서 보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에는 책임이 따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