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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의 낯선 언어 Feb 22. 2024

낙하하는 세계를 닦아낼 용기를 가진

이름 모를 소녀에게

오늘은 한 소녀가 눈이 세차게 내리는 거리에서

처연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감정이 마비된 멀어져 버린 눈을 가진 인간들이

사는 이 회색도시에서 소녀는 홀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늦겨울 흰 눈이 세차게 와

추울 법도 했지만 그 떨리는 손으로 낙하하는 눈물을

닦아냈다. 순간 “왜일까?”라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또 한 번의 세계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이겠지.

소녀가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 있는 곳보다 멀리 떠나기 위해 또 삶의 여정을 준비하는 것이겠지. 그래, 그래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 소녀 자신을 흔드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소녀가 울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세상은 더욱 버겁고, 고통스러워질 테니까. 소녀는 이곳에서 사는 동안 나와 같이 계속 미끄러지며 살아갈 테니까. 잠깐의 의미를 부여하고 안도하는 게 전부인 이 세상에서 진실은 소녀를 끝까지 괴롭힐 테니까. 고통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그러나 소녀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참고 또 참으며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 그 굳건한 발걸음이, 무미건조한 이 회색도시에서 뜨거운 눈물을 닦아낸 채 발걸음을 옮기는 그 이름 모를 소녀의 용기가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해 보였다. 눈물의 비극보다는 소녀의 그 태도가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제 소녀는 분명 강해질 것이다.

세차게 눈이 왔으니, 지친 소녀의 몸은 차가워졌겠지만

무수히 쏟아지는 흰 눈들 사이에서 꿋꿋이 서있는

소녀는 또다시 뜨거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이 사라질 유한의 운명을 가진

이름 모를 소녀는 지금쯤 웃고 있을까?

아마도 소녀는 이제는 웃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니,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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