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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의 낯선 언어 May 14. 2024

푸른 나무를 닮은 두 명의 여성.

그들의 몸짓과 콧노래.

내가 사는 지역의 교보문고에는 청소를 하시는 두 명의 여성이 (정확히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으나 나의 어머니 뻘쯤으로 추정된다.) 언제나 정성껏 청소를 하고 계신다. 그 두 분은 멀리서 보면 얼핏 쌍둥이로 보일 수 있는 청록색 색깔의 유니폼을 차려입었으며, 한 손에는 마른걸레를 들고 내가 온전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 공간을 정성껏 닦으신다. 나는 한동안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그 두 분의 대화소리를 경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대화의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롭다. 우선 이야기를 듣기 전에 그 두 여성의 몸짓을 한 번 바라보자. 그 두 여성은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춤을 추는 듯한 리듬을 타고 계셨다. 걸레로 선반을 섬세하게 닦아내지만 그와 동시에 잊지 않고 즐거운 콧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어떤 노래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마치 나의 어머니께서 내가 어린 시절에 가족을 위해 국수를 말아주실 때 주방에서 불렀던 그 허밍의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살랑이는 자유로운 몸짓과 기분 좋은 콧노래, 그러면서 몇 마디의 추임새들 “오늘도 청소를 해볼까아~”, “하하, 좋아 좋아.”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함이 묻어난 일상적인 언어는 둘의 행동을 한층 상승시키며, 노동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행위로 확장한다. 둘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끼리 속닥거리면서 ”하하, 호호“, “그렇지 않아? “ ”맞아!”, “정말?” 등등, 어린아이 같은 웃음과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연속된 노동의 피로도에서 느껴지는 육체의 지친 공백을 감정의 교류로 채워낸다. 그들은 매일, 매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이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지켜낸다. 카뮈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위대함을 건져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의 무너지지 않는 그 태도가, 그들 자신을 하염없이 상승시키는 용기로 느껴진다. 얼마 전 숲에서 본 푸른 나무가 보인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나뭇가지를 하늘 높이 뻗어낸다. 거기에는 어떤 좌절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으며, 그저 아름다운 나무의 몸짓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청량한 하늘만 있으면 좋으련만 나무가 있는 곳에는 비와 바람도, 때론 산에 가파른 절경에서 태어난 나무의 운명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나무도 자신의 운명에 관해 별말이 없다. 나는 저 두 여성의 태도에서 그 나무들의 우직함을 느낀다. “인간에게 있어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서있는 이곳에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높고 낮음, 개념의 상대적인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마음.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마음, 그 애쓰는 자신을, 타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그 두 여성의 아름다운 몸짓과 콧노래가 담긴 삶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의 마음을 바로잡아 본다. 그것은 용기이며, 또한 고단한 삶 앞에서 내딛는 인간의 힘찬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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