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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Jan 01. 2022

12-4. 각자의 시간, 쿠스코의 마지막 밤

[쿠스코]


성 크리스토발 성당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풍경이었다. 성당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기가 막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시간 여유도 있겠다,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아르마스 광장을 가로지른 다음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후에야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당 매표소 직원에게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을 써가며 운영 중인지 물어본 다음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갔다. 광장에 있는 성당들에 비해서 작고 아담한 성당이었다. 성당 천장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유추해가며 감상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의 얼굴과 온화한 성모 마리아, 그 외 주변 인물들이 그려져 있었으나 성화의 내용은 도통 알 길이 없어서 곧장 성당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 크리스토발 성당 가는 길



성 크리스토발 성당에서는 성 바실리카 대성당과 아르마스 광장이 미니어처마냥 축소한 듯 보였다. 나머지 지역은 꼼꼼하게 연주황색으로 칠해놓은 듯 했고, 주황빛 행렬은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까지 이어졌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연이은 오르막길을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옥상에서 한참 동안 쿠스코를 감상하고 있는데, 다시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고, 서둘러 아르마스 광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 크리스토발 옥상에서 본 쿠스코 시내                                



아르마스 광장 아치형 구조물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기 시작했고, 아르마스 광장은 촉촉해졌다.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새 아치형 구조물 안으로 모여 있었고, 광장은 텅 비었다. 조용한 광장과 빗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대성당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 때문에 우산을 챙긴 사람은 거의 없었고, 다들 비가 언제 그치나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루에 몇 번이고 비가 왔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제멋대로인 날씨가 이상하게 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쿠스코의 색다른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

대성당 옆에서 친구들이 서성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비를 덜 맞으려는 심산으로 대충 손을 머리 위에 올린 채 재빠르게 달려가 합류했다. 다들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비 오는 날, 아르마스 광장에서


기대만큼 맛있지 않았던 꾸이


꾸이를 판매하는 식당을 찾기 위해 광장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연이은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상점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메뉴판을 들고 따라오며 싸게 해줄 테니 자기네 식당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한번은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동시에 우리에게 붙더니 저쪽 식당보다 더 저렴하고 서비스도 주겠다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싸게 준다는 말만 해놓고 정확한 가격은 부르진 않았다. 재미를 느낀 우리들은 그들을 상대로 흥정했고, 음료수 한잔을 서비스로 주겠다는 직원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는 꾸이와 알파카 꼬치를 주문했다. 기니피그를 화덕에 넣고 통으로 굽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꾸이가 테이블에 등장했다. 생각보다 크기가 너무 작았다. 더욱 심각한 건 고기 크기에 비해서 먹을 만한 살코기는 얼마 없었다. 게다가 금방 식어버려서 질긴 껍질이 너무 딱딱해졌다. 그나마 알파카 꼬치는 먹을 만했다. 페루의 전통요리인데다가 비싼 요리라서 기대했지만, 실망스러웠다. 아무래도 관광지 한 가운데 있는 식당에서 덤터기를 쓴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품고 밖으로 나왔다.



꾸이
알파카 꼬치



쿠스코의 마지막 밤은 유쾌하게


저녁을 먹었지만, 여전히 배가 출출했다. 때마침 루나스 가든에서 받은 쿠폰도 챙겨와서 쿠스코의 첫날 점심을 먹었던 루나스 가든으로 향했다. 유쾌한 주인 아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칵테일과 안주를 먹었다. 여러 칵테일을 주문해서 마셨는데, 가장 인상적인 건 마추픽추였다. 각 층이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색깔마다 맛이 달랐다.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밀도가 다른 시럽을 넣어 층이 생기도록 만든 칵테일처럼 보였다. 주인 아재가 우리에게 칵테일을 제대로 마시는 방법을 설명해줬는데, 가장 아래쪽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며 빨대로 빨아들이면 각 층의 술을 균일하게 마실 수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마시는 것보다 훨씬 칵테일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다.


루나스 가든은 우리나라의 7080 감성의 라이브바처럼 보였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옆으로 음향 시설과 악기가 갖춰진 라이브 무대가 있었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운영하는 듯 보였다. 매장 안에는 우리 밖에 없어서 주인 아재는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도 된다고 허락해주셨고, 루나스 가든의 플레이리스트에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 흥겹게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숙소로 돌아와 쿠스케냐를 마시며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제 내일이면 쿠바로 가는구나! 즐거웠다 쿠스코!



마추픽추 칵테일
그동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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