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쿠스코의 스타벅스는 어떨까?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돌아온 후 우리는 매일 아침 한결같이 산블라스 시장으로 가서 1일 1주스를 실천했다. 종류가 정말 다양한데다 가격도 착하고, 맛과 신선함은 최상급이니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일주스 못지 않게 우리가 사랑한 음료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LAIVE라는 요거트 음료다. 요플레가 떠먹는 요거트라면 이건 마시는 요거트인데, 풍미가 정말 좋았다. 과하게 달지 않고 맛있게 달달한데, 양까지 많았다. 딸기부터 시작해서 바닐라, 플레인, 키위 등 맛 종류도 정말 다양했다. 쿠스코에 온 첫날, 우리는 LAIVE에 눈을 떴고, 그날부터 LAIVE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쿠스코에 간다면 꼭 LAIVE 요거트 음료를 마시는 걸 추천드린다. 맛도 좋고, 장 운동까지 활발해지는 건 덤이다 :)
오늘의 목표는 페루 전통음식 꾸이를 먹는 것이다. 꾸이는 기니피그를 화덕에 통으로 구운 요리인데, 페루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라고 하니, 여행자의 입장에서 먹어보지 않고 떠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법이다. 꾸이는 저녁에 먹기로 하고 우선 스타벅스로 향했다.
우리가 스타벅스에 온 이유는 오직 페루 스타벅스에서만 판매하는 메뉴를 먹어보기 위해서다. 그것은 바로 루꾸마 프라푸치노(Lucuma)와 알가로비나 프라푸치노(Algarrobina)였다. 루꾸마와 알가로비나는 모두 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매들이라고 한다. 열매에서 추출한 진액을 시럽으로 만든 후 에스프레소에 녹여서 음료로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 스타벅스는 친숙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배낭여행자가 자주 찾기 힘든 공간이다. 두 잔 가격이 무려 30솔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음할 겸 두 잔만 주문해서 나눠 마시기로 했다. 두 잔 모두 휘핑크림과 시럽이 얹어 있어 단맛이 상당히 강할 것으로 예상했다. 루꾸마는 아이스크림 호두마루맛이 났고, 알가로비나는 칙촉맛에 가까운 카페 모카와 비슷했다. 달콤하지만 고소한 향이 퍼지는 루꾸마가 내 입맛에 더 맞았다.
스타벅스 내부를 둘러보니 현지인보다 오히려 관광객들이 더 많았다. 스타벅스의 메뉴들이 한 끼 식사 가격보다 더 비싸게 책정된 쿠스코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루꾸마 한잔이면 산블라스 시장에서 신선하고 양도 많은 과일주스를 7잔씩이나 마시고도 남는 가격인데 굳이 스타벅스에 갈까? 루꾸마와 알가로비나를 돌려 마시면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각자의 시간
스타벅스에 앉아서 오늘의 일정에 대해 회의를 하다가 오늘은 각자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와 K는 예수회 성당으로 갔고, B와 S는 산 페드로 시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많은 성당을 둘러봐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전에 방문했던 성당에 비해 장식물이 덜 화려하고, 덜 웅장했다. 성화 전시실에서 성화를 감상했지만, 종교적 지식이 부족했던 나로써는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고, 가볍게 둘러보고 나왔다.
예수회 성당 관람을 마친 후, K는 잉카 마사지를 받으러 떠났고, 나는 일단 스타벅스로 돌아갔다. 루꾸마 한잔을 주문하고,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아르마스 광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르마스 광장은 맑은 날에 보면 화사하니 아름다운데, 추적추적 비가 내려 아무도 없는 광장도 나름 운치 있고 매력적이었다.
카페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남미여행을 떠난 지 어느덧 3주하고 2일이 지났는데, 지난 날의 기억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5개월 동안 여러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 자금을 마련하느라 애쓴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남미 곳곳을 둘러보며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되는지 내심 불안하고 의심스러웠다.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중 스타벅스 굿즈가 눈에 들어왔다. 페루의 각 지역명이 적힌 머그컵이었다. 평소에도 뭔가를 사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웬만해선 사지 않는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거금을 들여 스타벅스 굿즈를 구매했다. 컵에 그려진 페루를 대표하는 문화유산과 레터링이 적힌 디자인이 퍽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스타벅스가 마케팅을 잘한 건지, 아니면 비 오는 분위기가 감성을 자극한 탓에 산 건지 모르지만, 이미 지갑엔 돈이 빠져나갔고, 내 손에 컵이 들려 있었다. 정말 사고 싶었던 물건이라서 전혀 후회는 없었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머그컵에 커피를 담아 홀짝이고 있으니 이정도면 잘 쓰고 있다고 본다.
바깥을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고, 나는 산크리스토발 성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