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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Dec 30. 2021

12-2. 쿠스코 밤 산책과 황홀한 야경

[쿠스코]


진심이 담긴 과일주스


오늘 아침도 산블라스 시장에서 시작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페루의 넘치는 인심과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 마실 과일주스를 고르고 주문을 하니 아주머니께서 싱싱한 과일을 골라 즉석에서 믹서기에 잘라 넣으셨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아슈가(Asuga), 마스(Mas)?”라고 물어보셨다. 우리말로 하면 “설탕 많이 넣어줄까?”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마스(Mas)”라고 답하자 흡족한 듯 웃으시면서 설탕을 아주 듬뿍 넣으셨다. 이번에도 컵 한가득 주스를 받았고, 절반쯤 마셨을 때 주스를 더 주셨다.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그 자리에서 갈아서 주스로 마시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렇게 마시고도 한 잔에 2,000~3,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한국 카페에서는 생과일 조금 들어가고 과일 소스나 농축액을 넣어 맛과 향의 밸런스를 맞추곤 한다. 하지만 페루의 과일주스는 확실히 달랐다. 집에서 갓 만들어 낸 듯한 신선한 과일 주스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니..! 과일주스만 마셨는데도 속이 든든했다. 허기를 달래서 든든했던 걸까, 페루의 푸근한 인심 덕분에 든든했던 걸까? 아무래도 둘다 맞는 것 같다. 이제 한국에서 생과일주스는 못 사 먹을 것 같다. 과일주스의 정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신선한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드려요
푸짐한 과일주스



산블라스 시장은 채소나 과일을 파는 청과물 상점, 정육점 등 여러 상점이 있었고, 시장 한 쪽으로 과일주스, 샌드위치, 닭고기/돼지고기 스프나 국수를 판매하는 식당도 많았다. 놀라운 점은 재래시장 내부 과일주스 가게 사장님들은 모두 새하얀 위생복과 위생모,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식당이나 백화점 푸드코트보다 더 철저하게 위생과 청결에 신경 쓰는 모습에 신뢰가 생기기도 했고, 낯선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Do you know K-culture?


기념품을 구매하기 위해 12조각 돌 근처 기념품 거리로 이동했다. 하늘이 오전부터 흐리더니 기념품 샵에 도착하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슬비처럼 내리더니 머지 않아 우산이 없으면 흠뻑 젖을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졌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념품 샵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비를 피해가며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K-Pop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직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소녀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던 드라마를 우리에게 보여줬는데, 그건 바로 2009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였다. 정확히 10년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가 페루 사람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듯 했다. 등장인물의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흐릿한 240p 화질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식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아닌 어둠의 경로로 다운로드 받아서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외국에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니 너무나 반갑고 신기했다. 이걸 여기서 보다니..!


그러더니 한국 노래를 잘 아냐고 물어보더니 갑자기 노래 몇 곡을 틀기 시작했다. 딱 10년 전에 유행하던, 자주 들어서 귀에 익숙했던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K와 B는 그 소녀들과 노래에 심취하며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큰소리로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매장 안에는 우리 말곤 다른 손님이 없었기에 괜찮았다). 나와 S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껴 먼 발치에서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차마 끝까지 못 보고, 기념품을 마저 구경했다. 그렇게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뒤 비구름이 가실 때까지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쿠스코 골목
먹구름 몰려온다
K-POP 부르는 중



오늘은 제육볶음이다!


오늘 저녁식사는 제육볶음과 라면이다. B가 한국에서 챙겨온 여행용 튜브 고추장이 고기와 만나 K의 손을 거치자 먹음직스러운 제육볶음이 탄생했다. 고추장에 과일과 각종 양념을 넣었더니 제육볶음은 달짝지근하면서 적당히 매콤한 게 자꾸만 손이 갔다. 남미여행 중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맛있는 메뉴였다. 제육볶음에 와인을 곁들여 마신 뒤, 라면을 먹고 디저트로 작은 케이크와 잉카콜라를 먹었다. 이렇게 한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났더니 지금 내가 남미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 잠시 헷갈렸다. 쿠스코에 오래 머물다 보니 너무 편안해진 것 같다.



밥도둑 제육볶음



쿠스코는 밤도 아름답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산책을 나갔다. 숙소 근처에서 조금만 이동하니 낮은 동산이 있었다. 우리 숙소가 있던 곳이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어서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적당한 높이에 있어 야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야경이 아름다웠던 라파즈와는 다른 감성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쿠스코의 야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황홀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골목 곳곳에 채워져 있었다고나 할까? 라파즈보다 안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의 야경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튼 야경 감상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야경 감상중



누군가 쿠스코에 방문한다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아르마스 광장이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모습을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아르마스 광장은 낮, 저녁, 밤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데, 낮의 광장은 웅장한 멋을 자랑하는 대성당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광장 일대가 기운찬 에너지로 가득하다. 광장 한가운데 조성된 작은 정원과 그 안에 핀 형형색색의 꽃들이 광장에 화사함을 불어넣고 있다. 가까이에 두둥실 떠있는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기까지 한다. 저녁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검푸른 저녁 하늘과 오렌지빛 가로등 조명이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낮과 밤의 경계에 서서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는 순간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재미 포인트 중 하나다. 하늘의 밝은 빛이 가로등으로 옮겨지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선명해진다. 밤이 되면 광장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마치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 만큼 매혹적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따라 수 놓인 불빛들은 낮게 뜬 별들처럼 보인다. 성 바실리카 대성당 앞에 서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야경을 훑어보고 있으면,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말을 잃게 된다. 이번에도 넋 놓고 야경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감탄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매번 새롭고 벅차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쿠스코 야경                                



한적한 밤 산책을 마치고 나서 감성에 흠뻑 취한 우리는 이 느낌을 이어가기 위해 마트에서 맥주를 사들고 와서 홀짝이며 한껏 편하게 쉬었다. 역시 마무리는 맥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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