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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Jan 07. 2022

12-5. 여행 중에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이 있다?!

[쿠스코]


쿠스코에서 즐기는 마지막 여행


이제 쿠스코를 떠나 쿠바로 가는 날이다. 공항으로 가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삭사이와만과 크리스토 블랑코(예수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삭사이와만은 쿠스코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15분이면 갈 수 있어서 쿠스코 근교 투어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다. 처음에는 걸어갈 생각도 했지만, 택시를 타기로 한 건 정말 탁월한 판단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만 올라갔는데, 만약 여기를 걸어갔더라면 구경하기도 전에 힘이 다 빼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을 것이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운동 삼아 다녀와도 좋을 것 같지만, 결코 가벼운 운동은 아니리라 생각해본다.


삭사이와만 매표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입장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1인당 70솔이라는 상상도 못한 가격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가격표를 보자마자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삭사이와만을 포기하기로 했다.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추픽추를 비롯한 여러 관광지를 보고 왔기에 꼭 봐야 한다는 마음도 없었다. 대신 바로 옆에 있는 크리스토 블랑코로 이동했다. 거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서 덥지 않아 산책하기 딱 좋은 온도였다. 크리스토 블랑코에 가까워지자 저 멀리 삭사이와만 일부분이 보였는데, 친체로에서 봤던 거대한 돌로 만든 구조물들이 들판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삭사이와만에 입장하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제 내린 폭우 때문에 길이 온통 진흙탕투성이였기 때문에 조심조심 걸어서 동상 앞에 도착했다.





크리스토 블랑코에서는 쿠스코 시내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어제 방문했던 산 크리스토발 성당보다 높은 위치에 있던 터라 더 먼 곳까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황빛 지붕의 집들과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산맥도 함께 볼 수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쿠스코 시내의 전경은 다시 봐도 장관이었다. 멀리서 보면 산의 형세에 따라 집들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처럼. 예수상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하긴, 아르마스 광장에서 예수상 형체가 보일 정도였으니 동상이 큰 건 당연하지만, 이정도로 클 줄은 몰랐다. 예수상을 보는 것보다 예수상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다웠다. 이 좋은 풍경을 혼자 보고 계셨네!



크리스토 블랑코에서 본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가 내 손 안에 있다
쿠스코가 내 발 아래 있다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흐린 하늘에서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숙소로 내려왔다.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한 법이다. 매일 방문해서 이제는 정이 든 산블라스 시장에 있는 과일주스 가게로 향했다. 과일주스를 마시고, 정들었던 아주머니와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눴다. 쿠스코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잘가라고 인사해주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과일주스를 마시며 숙소로 돌아왔다. 우버 택시는 제 시간에 숙소 앞으로 도착했고, 우리는 짐을 택시에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머물러 정들었던 쿠스코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한참동안 창 밖을 바라봤다. 이제 페루를 떠나는구나...! 



과일주스 사장님


과일주스 맛집에서


비행기를 놓친 바보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체크인 데스크로 가서 예약 내역이 적힌 종이와 여권을 제출했다. 우리는 쿠바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우리가 제출한 종이를 유심히 보다가 입을 열었고, 충격적인 말을 했다. “너네 티켓 확인해봐, 항공권 날짜가 어제잖아?” ‘에이 설마.. 이 사람이 무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라는 생각을 하며 티켓을 확인했는데, 이럴 수가..! 종이에 적힌 내용은 “WED 30.01.2019 오후 15:00 출발” 당황스러운 마음에 직원에게 한번 더 물어봤고, 돌아온 대답은 전과 동일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거대한 망치로 뒤통수를 몇 대 세게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우리 중 아무도 일정표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항공권 체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유니에서 코파카바나 일정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을 때도 여행 전체 일정과 항공권 스케줄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불운 적립 포인트가 여기서 크게 터지고야 말았다. 비상상황이다! 단체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야 했다. 스카이스캐너를 켜고 쿠스코-쿠바 항공권을 검색했다. 최저가 항공권이 67만원이었다. 항공권을 재구매하기엔 금전적 부담이 너무나도 컸고, 살 수 있는 돈도 없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 돈을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의미가 퇴색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아비앙카 항공사로 전화를 걸었다.


S가 전화를 담당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고,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핸드폰으로 전화 연결을 했지만, 현지 로밍을 했음에도 통화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안내데스크 옆에 있던 Peru Information desk에서 전화를 빌려 썼다. 항공사와 연락이 닿았고, 우리의 상황을 설명한 뒤 당일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S가 침착하게 항공사 서비스센터 직원과 통화를 이어 나갔고, 우리의 신상정보(여권정보와 휴대폰 번호, 이메일)를 알려주었다. 공군 행정병 출신답게 알파벳 하나하나 제대로 말하기 위해 찰리, 브라보 등 아무튼 항공 관제 쪽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써가며 스펠링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전달했다. 상황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문제가 발생했다. 항공사 서비스센터 직원이 체크인 데스크 직원과의 통화를 원했으나 직원은 규정상의 이유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Peru Information desk 전화는 일정 지역을 이탈하면 신호가 끊기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서비스센터 직원에게 내 핸드폰 번호로 연락 달라고 전달한 후 전화를 끊었다.


항공사 서비스센터 측에서 전화를 주기로 했지만,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초조했다.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안감이 몰려 왔고, 점점 더 조급해졌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허무하게 여기서 끝나고 마는건가? 우리 쿠바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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