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SJ Apr 22. 2022

16-6. 모로요새의 석양과 남미에서의 마지막 밤

[아바나]


모로요새와 석양


우리가 걷고 있는 요새 건너편은 한창 축제 준비중이었다. 길가에 설치된 현수막을 보니 축제는 내일 날짜부터 시작했다. 넓은 공터에 축제 부스를 설치하고 있었고, 곳곳에는 테이블과 의자도 방치되어 있었다. 어떤 축제인지는 몰라도 규모가 상당히 큰 축제인 것은 분명했다.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축제도 즐길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우리가 있는 공원은 잘 정비되어 있어 산책하기 참 좋았다. 공터 한 바퀴 가볍게 둘러보고 모로요새로 이동했다.





모로요새에 들어가기 전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푸른 바다, 그 너머로 보이는 아바나 도심의 풍경. 아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 명소는 바로 이곳이다. 이 상태로 뒤를 돌아보면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진 카리브해와 수평선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도시와 자연의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환상의 장소! 카리브해를 배경 삼아 듬직하게 서 있는 모로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높고 단단한 성벽과 가파른 절벽. 허가되지 않은 불청객은 호락호락하게 들어가지 못할 만큼 아주 견고하고 삼엄해 보였다.



모로요새 앞 들판과 카리브해 수평선
모로요새의 튼튼한 성벽



모로 요새 안으로 이동했다. 요새답게 내부로 들어가려면 좁은 통로와 터널을 따라 들어가야 했다. 터널 끝에는 간단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요새와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와 연혁도 적혀 있었다. 작은 전시회장처럼 꾸며놓았다. 요새 곳곳에는 유지 보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조금 늦게 온 탓인지 요새 내부는 조금 한산했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요새 외부 옥상으로 올라갔다. 대포는 곳곳이 녹이 슬었고, 건축물도 바닷바람에 풍화되어 이곳저곳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였다. 페인트를 칠해 보수 작업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대로 방치한 덕분에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멋이 느껴져서 오히려 더 좋았다. 모로 요새에서는 아바나를 둘러싼 말레꼰 해변과 도심 일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모로 요새 아래로 가파른 절벽이 있었지만, 안전망이나 펜스는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최대한 안전을 의식하며 풍경을 감상했다.



모로요새의 대포



요새 곳곳을 돌아다녔더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내일이면 남미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라서 괜히 우울해졌다. 평소보다 더 아련한 마음으로 멍하니 노을을 바라봤다. “마지막”이라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우울감은 그동안의 일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한 달 동안 파란만장한 일들로 가득했다. 즐거운 일도 많았고 아찔한 일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행복의 연속이었다. 언제 또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렸다. 지나간 아쉬움에 얽매여 한탄만 하다가 눈 앞에 있는 풍경을 놓쳐 나중에 가서 아쉬워하지말고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여행 중에는 후회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맨눈으로 태양을 바라보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눈이 부셨고,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그나마 볼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던 나는 손으로 태양을 막고, 아바나 도심 전경을 보다가 곁눈질로 노을을 힐끔 쳐다보는 방법으로 노을을 감상했다. 다행히 태양이 지평선에 닿아 붉은색과 주황색이 한 데 얽혀 빛을 내뿜어 노을이 절정을 이룰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남미 여행에서 만나는 마지막 석양! 석양은 말레꼰 해변과 모로 요새, 아바나 일대를 붉게 물들이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고 하늘은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석양이 지고, 한동안 감상에 젖은 채로 앉아 있었다.



모로요새의 석양




아바나의 랍스터는 실망스럽다.


오늘 저녁 메뉴는 랍스터로 정했다. 한국 여행 방송 배틀트립을 포함해, 네이버 블로그 등 여러 매스컴에 여러 번 등장한 가게를 방문하기로 했다. 랍스터와 피자를 주문했는데, 아주 별로였다. 우리는 이미 트리니다드에서 최상급의 맛을 자랑하는 산호세 레스토랑의 랍스터 세트를 먹어본 터라 이를 감안하고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냉혹한 혹평을 내릴 수 밖에 없는 맛이었다. 산호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랍스터 식감은 괜찮았으나 소스와 잘 어우러지지도 않았고, 짠맛도 과했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짰다. 랍스터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에 실망도 컸다. 남미 여행을 통틀어 worst 3에 들 정도로 맛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식당 내부 조명이 어둡고 음침해서 분위기마저 엉망이었다.



식당 가는 길에 본 카피톨리오
혼돈의 랍스터



아바나에 처음 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이곳의 밤거리는 치안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골목이 많은데 어두컴컴한 주황빛 가로등 불빛과 골목길 때문에 밤산책을 좋아하는 나도 이곳의 밤은 영 탐탁치 않았다. 그래서 아바나의 밤거리는 되도록 단체로 다니는 걸 추천한다. 혼자 다닐 일이 있다면 빠른 걸음으로 다니는 편이 좋을 듯하다. 느린 템포로 걷는다면 주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구시가지는 관광 명소라서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특유의 음습함과 어두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 근처 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낀 점이다.



남미에서의 마지막 밤


바로 숙소로 들어가면 너무 아쉬울 시간이라서 우리는 숙소 옆 술집의 테이블에 앉았다. 가게는 광장 한 켠에 자리잡은 호프집이라서 낮이든 밤이든 광장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분위기만큼은 항상 좋았다. 타워 맥주를 주문해서 맥주를 마셨다. 매력적인 비주얼에 기대가 컸지만 거품처럼 부풀었던 기대는 한순간에 꺼지고 말았다. 맥주를 따라보니 절반 이상이 거품이었고, 맥주맛도 밍밍하기만 했다. 이곳은 술맛보다는 분위기에 흠뻑 취하는 술집에 속했다. 약간의 취기가 몸에 도는 상태로 가볍게 밤산책 한바퀴 돌고 나서 광장 근처 푸드트럭에서 츄러스를 사와 캔맥주와 함께 마시며 남미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여행의 마무리는 맥주다!



숙소 근처 호프집
타워맥주
실시간 츄러스 만드는 중
츄러스와 캔맥주









매거진의 이전글 16-5. 올드카 타고 아바나 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