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SJ Jun 05. 2022

17. 무사히 돌아오는 것까지 여행이지

[귀국]

우리의 비행 여정은 다음과 같다. 아바나에서 모스크바로 넘어간 뒤,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아바나-모스크바행 비행기에서는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기내식이 나오면 맛있게 먹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기내식 맛은 보통 수준이었지만, 케이크만큼은 정말 맛있었다. 케이크 맛집이었네.. 비행시간은 길었지만, 체감 시간은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 



케이크가 맛있었던 기내식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우리가 방문한 국가 목록에 러시아도 포함된 거나 다름 없었다. 물론 도심을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많이 남았지만, 밖을 나가기엔 애매했다. 그래서 우선 수중에 남아있던 유로화를 루블화로 환전했다. 비행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게이트 근처로 이동한 다음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머물렀던 쿠바는 한여름이었는데, 이곳, 모스크바는 한겨울이었다. 창밖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대륙이 달라졌고, 계절도 정반대가 되었다. 참으로 진귀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모스크바는 쿠바와 다르게, 공항에서 와이파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하면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버텨냈다. 그러다 상점에 들러 물과 체리맛 코카콜라를 사왔다. 당시 2018-2019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체리맛이라 기대감이 컸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톡 쏘는 콜라에 체리향이 올라오는, 쉽게 예상이 가는 맛이었다. 배가 고파서 근처 식당에서 피자도 먹었다. 피자 맛은 어느 상점에서나 맛볼 수 있는 평범한 맛이었다.



모스크바는 겨울이었다.
코카콜라 체리맛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했다. 러시아 국내선을 타고 지역 간 이동이니까 금방 걸릴 줄 알았으나 러시아 대륙이 아주 넓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대략 6~7시간이나 걸렸다. 역시 러시아는 거대하다. 우리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다. 너무나도 이른 새벽인 탓에 직원도 출근하지 않은 듯 보였다. 마치 음흉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 듯한 실험실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적막함이 맴돌았다. 잠시 길을 헤맸지만 인기척을 느꼈는지 머지 않아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짐 검사를 받고, 계단을 올라갔다. 육중한 비상구 문을 열고 나오니 게이트가 나왔다.


 여전히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고 게이트 앞에는 우리들만 있었다. 가장 편한 곳을 찾아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점은 셔터로 굳게 닫혀 있었고, 창밖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블라디보스톡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보니 표지판에서 한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보는 한글이던가! 동이 트자 사람들이 하나둘 게이트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공항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단체팀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외국인보다 한국인 수가 더 많은 걸 보고, 여행이 정말 끝나간다는 걸 체감했다. 때마침 상점들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남은 루블화로 초콜릿을 사서 나눠 먹었다. 하룻밤을 꼬박 샌 우리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 드리웠다. 졸음이 몰려올 때 즈음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이제 인천으로 돌아갈 때다.



한글이 적혀 있는 블라디보스톡 공항 안내문
게이트 앞에 있던 쉼터
날이 밝았다



띵-띵- 좌석 착석 및 안전벨트 착용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고, 비행기 내부 불이 소등되었다. 창밖을 내려다 보니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한국이다. 어째서인지 그 광경을 보고 났더니 속이 답답하고 우울해졌다. 남미의 자연에 익숙해진 탓인지 한국의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적응이 안될 정도로 아파트 숲이 울창했다. 남미는 거리 곳곳이 화려한 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검은색, 흰색, 회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이 확 들었다. 우리나라의 도심 경관은 좀 더 화려해져도 좋을 듯 싶었다. 여행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던지 칙칙한 아파트 숲과 밋밋한 도심 경관에 익숙해지고, 우울증을 털고 회복하기까지 대략 1주일 정도 걸린 듯 하다.



Welcome to Incheon



Welcome to Incheon이 유난히도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짐을 찾고 점심을 먹기 위해 푸드코트로 향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식을 먹어야 했다! 야무지게 한식을 즐기기 위해서 묵은지 돼지고기 김치찜을 먹었다. 그래, 이 맛이지! 한국의 맛에 감동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꿈같던 한 달간 남미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행복했다.



묵은지 돼지고기 김치찜
집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16-7. 남미여행의 마침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