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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시 May 19. 2023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를 말해준다.

새벽북클럽 4월 모임후기 :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 [새벽북클럽]은 인천 송도에서 월 1회 진행되는 엄마들의 독서모임입니다. 새벽북클럽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 담겨 있어요.



새벽북클럽 4월 도서





아동학대, 독박육아, 해외입양, 미혼모 차별 등의 문제를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낸 책 <이상한 정상가족>은 사회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나의 무관심과 무지를 일깨워준 책이다.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인 2017년을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당시에 많은 언론에서 이 책을 다루는 걸 보았다. 그러나 출산을 앞두고 '가족'에 대한 더 큰 그림을 그려가던 나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이 책을 애써 피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라는 주제의 불편한 이야기를 접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자연스레 잊힌 책이었다.


6년의 세월이 흘러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날 줄이야.


늘 그렇듯 현실은 뒤죽박죽이다.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는 듯하다가도 노키즈존이나 '민식이 법' 논란을 볼 때면 약한 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더 심해지는 듯하다. 정상가족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은 눈에 띄게 확산되었지만 가족 단위 총력전으로 사회의 거친 경쟁을 헤쳐나가는 양상은 더 치열해졌다.

어렵게 뗀 한 걸음이 몇 걸음 뒤로 후퇴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소설가 정세랑이 『피프티 피플』에 썼던 글 한 대목을 떠올리며 마음을 의지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중략)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나와 이 책 역시 징검다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던진 돌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갔기를, 다음에 오는 사람들의 '이어 던지기'를 기대하며 개정증보판을 내어놓는다.

- <이상한 정상가족> 개정증보판 프롤로그 中


돌을 멀리 던지는 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니 하는 데까지만 하면 된다는 위 글을 한참이나 곱씹으며 생각했다.


'그래. 김희경 작가님이 책을 쓰는 행위로 돌을 조금 멀리 던졌다면 우리 새벽북클럽에서는 이 책을 읽고 나누며 돌을 조금 더 멀리 이어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지 않을까.'





새벽북클럽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




1️⃣ ‘동반 자살'이라고 부르는 관행, 'O린이'라는 단어에서 희화된 어린이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져보아요. 내가 고치고 싶은 문화, 관행, 언어 등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용어]

초보를 일컫는 용어들에 사용되는 O린이 (ex : 주린이, 부린이, 요린이, 헬린이)

타인을 비하하는 용어들 (ex : 맘충이, 틀딱, 개근거지, 잼민이, 급식충, 김여사)

어원을 떠올리면 부적절한 표현 (ex : 골프 첫 라운드를 나갈 때 사용하는 '머리 올린다'는 표현)

처음을 나타내는 행위에 '첫' 대신 '처녀'를 붙이는 표현 (ex : 처녀작, 처녀비행 등)


[문화 & 관행]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나친 외모지상주의와 그로 인한 거침없는 외모평가

남편과 '함께' 하는 육아에 대해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는 표현 → 듣기 불편해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아주버님, 서방님, 시댁, 처가와 같은 불편한 호칭들 →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관계에서 호칭이 서로를 더 서먹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경조휴가가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경조휴가와 다른 경우가 아직도 더러 있음)

'미혼부'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는데 '미혼모'라는 말은 자주 사용됨 → 미혼모 대신 '비혼모'라는 표현 사용을...

일부 TV 프로그램에서 캐리어를 들어주는 남자들 → 여자들도 그 정도는 들 수 있어요....ㅋㅋㅋ

도로로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피해야 하는 게임 '스쿨존을 뚫어라' 논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어른들을 위한 장소는 개방되어도 놀이터는 꽤 오래 개방되지 않았음.

줄임말도 적당히 했으면....


▶ 이렇게 많은 용어와 문화들이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 깜짝 놀랐다. 책을 통해 이런 것들을 떠올려보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 되었고, 이제부터라도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자고 함께 다짐했다.



2️⃣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차별이나 폭력이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교사 체벌 (ex :  볼꼬집기, 허벅지 때리기, 뺨 때리기, 언어폭력,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표현들, 단체 기합 등) → 권위에 복종하며 노예근성이 생긴 사람도, 반면 교사에 강한 저항감을 갖게 된 사람들도 있었음

교사 체벌이 처음 이슈화되던 당시에는 '체벌' 자체가 아닌, '학생'이 어떻게 '선생님'을 신고하는지가 이슈 되었음

촌지 문화 → 아이들도 선생님의 차별을 뻔히 안다...

과거에만 해도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웠음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 (ex : 시댁에 첫인사를 갔을 때 남편 짐과 본인 짐을 다른 방에 놓고, 식사도 따로 함) → 문화 충격...

남녀 차별 (ex : 남자인 오빠와 딸인 나 사이의 용돈 차이 & '계집애'라는 호칭 등) → 굉장히 속상해서 펑펑 울던 기억....


▶ 위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경험은 가해자는 잊고 살지만 피해자는 또렷이 기억하게 된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B님께서는 엄마가 과거의 잘못한 본인 행동을 커서 직접 사과하셨다며, 그 후로 엄마를 용서하게 되었다는 따스한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3️⃣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p.204)" → 내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의 부모가 나에게 주었던 육아방식 중 자녀에게 꼭 주고 싶은 것 혹은 주고 싶지 않은 것을 나눠보아요.


[주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는 '믿음'

자녀에게 헌신적이기보다는 '너는 너, 나는 나'라며 독립적인 삶을 가꿔가신 태도 (덕분에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키웠다)

방목하듯 키우지만 결핍은 느껴지지 않도록 양육하는 태도

근검절약 & 성실하고 부지런한 태도

엄마의 요리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엄마 반찬냄새...)

자녀 친구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시는 부모님의 태도 (ex : 내가 없어도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

가족들과의 추억(사진, 여행)

원만하고 편안한 부부관계


[주고 싶지 않은 것]

무조건 아끼는 데에만 열중하는 것

아이는 어른에게 무조건 사과해야 하지만 부모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사과하지 않는 것

인색한 칭찬 (지인분들께는 자녀 칭찬을 하시면서도 당사자에게는 직접적인 칭찬을 안 하시던 부모님..)

감정적으로 대하는 태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씁. 하지 마!'라고 가로막는 것

마구잡이로 혼내는 것

부부싸움

과정 대신 결과로만 판단하는 것 & 비교하는 말


▶ 결국 부모님이 우리를 키워온 육아방식은 우리 삶에 고스란히 내면화되어 있었고 알게 모르게 내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물려주고 싶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 또한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내 자녀들은, 내 후손들은 점점 더 멋지게 살아가기를.




무거운 주제의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



B님께서 책을 추천하시며 살짝 내뱉은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주제가 무거운 책은 모임에서 추천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읽는 사람들도 어렵다. 이번 모임에서도 역시나 이 책이 읽기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분이 계셨고, 심지어 나도 이런 류의 책은 잘 읽히지 않아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읽었다.


하지만 이번 모임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함께' 무거운 책을 종종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것이야말로 이 사회에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길이며, 후대를 위해 조금이나마 돌을 앞으로 던져놓는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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