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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May 12. 2023

학도병 이우근의『부치지 못한 편지』

캠프 그리브스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젊은 날



나 : 선재야, 나중에 크면 군대에 가잖아.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선재 : 짜증은 나겠죠. 욕도 나오고. 그래도 뭐,어쩔 수 없죠. 가긴 가야 한다고 하니까. 다들.
짜증 나니까 욕하고 갈 것 같아요.
나 : 안 가도 되는 방법은 많아.
선재 : 또 공부 엄청 더 해야 한다는 거죠? 그냥 갈게요, 군대. (깊은 한숨)


이토록 현실적인 답변이 나올 줄야. 군인 아저씨에서 이제는 군인들이 애처로워 보이고 10살짜리 아들과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가 됐다. 군대를 안 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미 10살짜리 아이도 알아버린 국방의 의무는 짜증은 나지만 가긴 꼭 가야 하는 곳이 돼버렸다. 무겁게 안겨진 의무는 알지만 그 뒤에 숨겨진 무수한 희생과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의 권리는 누구도 자세히 설명해 준 적이 없기에.


어린이날 전날 아이들과 함께 곤돌라를 타고 캠프 그리브스에 다녀왔다.




곤돌라를 타고 떠나는 하늘 길




세상에, 평화로운 하늘 위를 날아오니 곳곳에 지뢰밭 · 저격 위험 푯말까지 세워진 곳에 갤러리가 있을 줄야! 가끔 주변에 뱀이 출현하여 곳곳에 약품 냄새가 난다고 하는 글은 오히려 애교로 봐줄 만했다. 빨간 하트 모양 포토존 뒤로 지뢰라는 글자가 생생하게 박혀 있는 곳이었으니까.






볼링 핀들이 세워진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전쟁 당시 미군 장교들이 사용하던 볼링장이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넓은 전시실이 보이는데 커다랗게 떠있는 얼굴들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대부분 이름을 알 수 없는 참전 용사들. 바래고 뭉개진 사진만큼 대부분 신원 미상, 이름도 나이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얼굴임은 분명하다.


그곳에서 짧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두 아이들이 나에게 손짓했다. 전쟁이 배경인 흑백 영화가 재밌는 공간인 양 깔깔깔 웃으며(우리 아이들 밖에 없기에) 신발도 벗고 즐겁게 뛰어다녔다. 3분이라는 짧은 영상이 아이들 웃음소리와 섞여 울컥 눈물이 맺혔다.




학도병 이우근의『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영상과 이우근의 편지 내용 일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十여명은 될 것입니다.


로 시작하는 편지는 요즘 같은 군대도 아니고 어제까지 연필을 잡고 공부하던 어린 중학생이 필기구 대신 을 들고 나와 학교(포항여자중학교)에서 전투를 하다 싸우고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그 모든 감정을 죽기 전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유서가 아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에게 그리움을 담아, 전쟁에 대한 온갖 의문과 참혹을 담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위로받고자 하는 가녀린 마음을 담은 편지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꿈도, 어린 소년의 희망도 았아갔다. 전쟁은.


스스로를 달랠 길 없어 유일하게 편지로나마 외쳐보는 시간이었으리라. 오늘 죽을 것 같지만 오늘을 살아내서 다시 한번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긴 편지 한 토막.


복잡하고 괴로운 심경 속의 작은 소년이 우리 선재, 선율이, 나의 조카와 내 이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여왔다.


핏자국에 얼룩진 일기와 어머니께 미처 전하지 못한 편지가 동성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이우근의 옷 수첩 속에서 발견됐다. 전쟁이 끝나면 옹달샘의 시원한 냉수를 마시겠다던 어린 소년. 죽어가는 학우들, 자신이 죽인 누군가의 고귀한 생명 속에서 순수했던 전쟁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냉수 먹고 속 차리는' 현실이 진짜 일어나길 바랐던 건 아닐까. 소박하지만 텃밭에서 정직하게 가꾼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상추쌈, 그 밥상을 다시 마주하길 얼마나 고대했을까.



전쟁은 우리의 평범했던 밥상, 늘 마주 했던 가족들, 혼자 걷던 오솔길,
깊은 산속 시원한 옹달샘물,
생명은 모두 존엄하다는 당연한 사실.
그 모든 것을 앗아간다.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눴기에 같이 싸우고 죽였던 적이지만 그 적군에게 조차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하는 대목을 들을 땐 어린 학생도 아는 것을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만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전쟁 한가운데가 아니라 위에서 지휘하고 지켜보기만 한 걸까.


6·25 전쟁 사진 중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다리 위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건너가는 장면이 있다. 통일 전망대에서 소팔이와 외국인 친구 Gery언니와 함께 그 사진을 봤을 때 Gery가 제일 먼저 울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아이를 안고 짐을 둘러메고 아슬아슬한 높이의 난간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전쟁을 피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머리가 아득해진다. 끝도 없는 깊은 강물에 빠지거나 포탄에 죽어가거나, 희망이라곤 없는 좁디좁은 난간 위를 사람들은 목숨 걸어 건너고 있다. 사람을 먼저 피하게 하고 보호하는 최소한의 배려나 시간조차 없을 만큼 다리 폭파가 우선이었을까.


나라가 국민들을 지켜주지 않는데도 어린 학생들은 나라를 위해 총을 들었다. 이름 모를 나라에 와서 수많은 청년들이 죽어갔다.


나는 우근이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라가 아니라 무서운 전쟁의 상황에서 순수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들과 어머니를, 자신의 동기 학우들을 지키고 싶었던 거란걸.


짧은 영화의 첫 구절에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가 떠올랐지만(아마도 영어 자막 때문이겠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떠오른 건 윤동주 시인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윤동주 『쉽게 씌어진(쓰여진) 시』 중에서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선재의 말처럼 짜증 나고 슬픈 의무로 군대로 향하는 현실이라도 일상의 평범한 '자유'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꾸준히 배우고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겪은 전쟁이고 우리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 쉽게 쓰여진 시도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시다. 이우근 학생의 유서 같은 편지를 읽으며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일기장에 담긴 것 같은 시를 떠올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강 인도교 폭파 사진과 평화 누리 공원에 세운 '평화의 발' 조형물 (2015년 제작)




1950~2023 한국전 발발 73주년,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한 2023년,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에서 이슬처럼 사라진 젊은 날의 초상을 만난다.
어린 나이에 UN군의 이름으로 참전했던 파병 용사를 만나고
어린 나이에 학도병, 소년소녀병의 이름으로 참전했던 어리고 젊었던 용사들을 만난다.  

▶ 곤돌라 운영시간(임진각 평화곤돌라) : 9:00 ~ 18:00 (주말은 ~19:00)
매표는 종료 30분 전 마감
▶ 캠프그리브스 운영 시간 : 10:00 ~ 17:30
▶ 입장료 : 무료
▶ 부치지 못한 편지 상영시간 : 3분

갤러리 그리브스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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