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해방 만세
쉼에 나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길 원하시나요?
쉼 후, 어떻게 달라지고 싶으신가요?
그녀들과의 쉼을 향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처음 우리, 그녀가 원했던 쉼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원했다. 제대로 된 쉼을 통해서 자존감이 회복되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후에는 차오른 에너지로 성취를 맛보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아니 적어도, 일상의 수레바퀴를 굴려가고자 했다.
그저 애를 낳았을 뿐인데. 무엇 하나 맘대로 컨트롤되는 것이 없다. 나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에 기약도 없다. 그 와중에 세상이 나를 향한, 그리고 나 자신이 나에게 갖는 기대가 한 자도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인지 외면하고만 싶은 무자비한 현실인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실은 그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때로는 상황에 또 때로는 욕망에 내몰린다.
쉼을 넘어서서 그녀가 진짜 원하는 존재함은 어떤 모습인 것일까?
코칭이 진행될수록
그녀가 원하는 쉼의 모습이 달라져갔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방해받지 않는 일상.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쉼이 되리라 생각했다. 산적한 집안일이 눈앞에 보이면 쉬려야 쉴 수가 없으니 집을 벗어나기로 했다. 그리고 맘 편히 쉴 수 없게 마음을 짓눌러왔던, 해야 하는데 하지 않던 일들을 조금씩 들여다 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삶이 회복되는 쉼에 대한 근본적인 해갈이 될 수 없었다.
일상의 회복이 필요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를 땐 운동을 하라 했던가. 일상의 균형과 루틴을 잡아가고자 간헐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붙잡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과 몇 개의 단어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아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운동을 하고, 때로는 사람을 만나고, 짧은 기록을 하며 그런 일상이 '괜찮다' 여겨졌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나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도 충분히 쉼이 됨을 느꼈다.
쉼을 찾아가는 나선형의 여정,
그 중심에는 나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쉼표를 디자인하자고 시작한 여정에서 이제 그녀는 쉼을 넘어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삶과 쉼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고백이 그녀 입에서도 나오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은 대화의 주제를 쉼에 국한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모든 시도가 다가가고자 시도했지만 다가갈 수 없었던, 그녀의 참 자아를 향하고 있음을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방향을 알아버렸다고 등 떠밀어 재촉할 이유도 반드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그저 그러함을 인정할 뿐, 욕구의 방향 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자유로워짐이 중요했다.
쉼, 숨, 머무름, 지금 느끼는 감정.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되버렸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매몰되지도, 마땅히 어떠해야 함에 휩쓸리지도 않고 나를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 없이는 쉼을 논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쉼 다운 쉼도 불가능했다.
엄마 이전에 나로 살아가야 가능한 쉼.
엄마 해방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