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시 Aug 18. 2023

"고름은 째서 짜버려야 빨리 낫는 법이야."

새벽북클럽 7월 모임후기 : <공중그네>를 읽고

* [새벽북클럽]은 인천 송도에서 월 1회 진행되는 엄마들의 독서모임입니다. 새벽북클럽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 담겨 있어요.



새벽북클럽 7월 도서


책 <공중그네>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이를 찾아온 '다섯 명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책이다. 저자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 의사가 환자들을 치유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는데, 소재도 접근방식도 다소 엉뚱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정신과를 찾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이들이 엄청난 병을 앓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고, 새벽북클럽 모임에서는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도 치유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문제인지도 모르고 억눌러온 문제를 발견하게 될 수도, 이라부 의사의 환자가 되어 함께 치료받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떤가. 원래 현실과 소설은 한 끗 차이 아니던가.


(아래에는 이 소설의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새벽북클럽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


1️⃣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거나 공감 가는 에피소드 또는 인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아요.

고슴도치 :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의 중간 보스 @이노 세이지

첫 회사 상사를 참 싫어했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싫어한 분이셨죠. "오늘 뭐 할 건가?"와 같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일삼는 분이셨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경력직 대리님 한 분이 입사하셨는데 이 상사분께서 항상 그런 어려운 질문으로 갈구(?) 셔도 참 잘 대처하시더라고요. 그 상사분은 이 대리님께 점차 마음을 열어가며 본인 얘기도 하시고 웃음도 많아지고 의지하시는 모습까지 보이셨어요. 경력직 대리님은 회사 토박이들을 제치고 고속 승진도 하셨고요. 이 대리님처럼 포기하지 않고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이 상사분도 결국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고요. 고슴도치에 등장한 사람들도 비슷하잖아요.


공중그네 :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야마시타 고헤이

우치다를 찍으려다 본인이 포착된 영상을 본 고헤이 자신. 당혹스러웠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치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다시 연습 상대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그의 모습에게서 그는 다시 회복될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하게 되었고요.

고헤이가 정말 본인이 문제라는 걸 몰랐을까 싶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헤이를 기다려준 주변 사람들이 참 인상 깊었어요.

우치다를 경계하는 고헤이와 이것이 '세대 간의 문제는 아닐까' 고민하는 고헤이의 모습을 보며 세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 요즘 보면 MZ 세대들이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 분위기가 크게 변화해 가는 과정 속에 우리 세대가 있어서 우리는 양쪽 모두를 이해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장인의 가발 : 병원 원장이기도 한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젊은 의사 @이케야마 다쓰로

다쓰로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회사에서 엄숙한 회의시간에 엉뚱한 대답을 해보고 싶다거나 상사 뒤통수를 때리는 상상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20대 회사생활의 업무 스트레스 아니었나 싶어요. 조직 속에서 일탈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런 강박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 저는 회사 속에서의 일탈을 '칼퇴'나 점심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퇴근 시간이 되어도 다들 눈치를 보다가 부장님이 퇴근하시면 그 후로 퇴근하는 문화였는데 저는 퇴근 시간이 되면 그냥 당당히 퇴근했거든요.

(추가로 나눈 이야기) 여러분은 이끌리는 사람인가요? 이끄는 사람인가요?

→ 모임 분위기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결국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 같아요.


3루수 :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후배를 의식하며 제구력에 이상이 생긴 야구선수 @반도 신이치


여류작가 : 자신의 작품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기 작가 @호시야마 아이코



2️⃣ 여러분 주변에는 이라부 같은 존재가 있나요? 또는 닮고 싶은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이라부 같은 존재를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직장에서 만나 같은 일을 하던 동료 언니를 소개하고 싶어요. 저희는 같은 업무를 하는 사이였고 통하는 게 많았지만 일하는 스타일의 차이 때문에 삐걱거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라면 그냥 꿍하고 넘어갔을 상황에 언니가 먼저 진솔한 대화를 꺼낼 수 있도록 하고 뻥 터트려 주었어요. 찐한 대화를 나눈 후 오히려 저희는 찐친이 되었고요. 그 직장은 그만뒀지만 그 언니는 곁에 계속 두고 싶은 사람이에요. 순수하지만 어른다운 모습이 너무 좋아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요.

저는 이라부의 '자유로운 모습'과 닮은 제 고1 담임선생님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희 부모님께서 당시에 음식점을 운영하셨는데 선생님께서 저희 음식점에 오셔서 식사도 하시고 저희 아빠, 엄마께 형님, 누님과 같은 호칭도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이 우울증을 앓으셨더라고요. 저도 연락을 드리지만 선생님께서도 종종 제 안부를 물어주시며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관계가 되었어요. 말나온 김에 조만간 한번 찾아뵈야겠네요.

저는 '동심'을 지켜나가는 듯한 이라부의 모습에 남편이 떠올랐어요. 저는 남편과 베프 같은 사이인데요, 동심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라 참 좋아요. (이때 새벽북클럽 멤버분들은 각자의 나이를 공개했다는...ㅋㅋㅋ)

저는 또렷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이라부의 모습에서 '첫째 딸'이 떠올랐어요. 제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무릎을 탁 치는 해결책과 영혼이 맑아지는 답을 제시해 주는데 참 좋아요.

저는 '자유영혼'처럼 행동하는 이라부의 모습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했던 지인들이 떠올랐어요. 이전 직장 동료 중에 이라부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하며 사는 듯한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약대에 가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그런데 진짜 약사가 되셨더라고요. 또 한분은 지방에 거주할 때 남편 동료의 와이프 분이셨는데, 뚜렷한 관계도 없는 분야에 지원해서 좋은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게 되셨어요. 위 두 분과 이라부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일단 집이 유복하게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 일반인은 선택을 할 때 가성비와 시간, 기회비용 등을 고려해 효율적인 선택을 하려 하고, 부유한 사람은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러다 보면 크게 터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3️⃣ 힘들 때 나를 응원해 준 말 또는 내가 해준 말이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보아요.


[콘텐츠로 접한 위로의 말말말]

책 <일하는 마음>의 저자 제현주 님이 북토크에서 하신 말씀인데요, "근본적인 생각을 너무 자주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어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몸의 상태와 감정의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상태가 안 좋을 때에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는 대신 잘 먹고 잘 자는데 집중하라고 하더라고요.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이야기라 소개하고 싶어요.

둘째 아이가 어릴 적 잠투정이 너무 심해서 힘들었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들이 위로가 되었어요.

제가 삼수를 해서 굉장히 외롭고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요, 우연히 엄마 따라 절에 갔다가 "욕심을 버려라"는 글을 봤어요. 그걸 보고 묘하게 힘듦이 잊힌 기억이 있어서 그때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직장에서의 말말말]

직장에서 상사분이 "좋습니다. 그대로 송부하세요.", "잘 쓰셨네요."와 같은 인정의 말에 큰 힘을 얻어요.

사업을 하면서 젊은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요, 특히 한 친구가 일을 그만두고 새 직장에 들어가면서 "사장님 덕분에 제 자존감을 많이 회복했어요."와 같은 인사를 건네는데 마음이 참 따스해졌어요.


[가족의 말말말]

남편이 "애들 생각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참 큰 위로가 되었어요.

동생이 "언니, 언니에게 평소에 배우는 게 참 많아."라며 연말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큰 힘이 되더라고요. 이 말이 너무 좋아서 일을 시작한 친구에게 같은 말을 전해주기도 했어요.

아이가 일기 쓰듯 방에 혼자 끄적여놓은 메모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직접 보여주심) "오늘도 나는 엄마한테 짜증을 받았다. 그래도 난 엄마가 좋다♡" 이걸 보고 다시는 아이에게 짜증 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현실은...^^;;

아이에게 "이놈~~~"이라고 화내자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화내지 마. 우리 가족이잖아" 그 말을 들으며 참 뭉클했어요.



4️⃣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감상평을 짧게 나눠보아요.


[인상 깊었던 구절]

“그런 행동을 1년 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중략) 뻔뻔스러운 인간은 그 뻔뻔스러움을 주위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게 만듦으로써, 점점 더 뻔뻔스럽게 변해간다.
ㅡ <장인의 가발> 에피소드에서 나온 구절인데 이 말이 너무 공감되었어요. 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정말 기대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 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믿고 모든 걸 맡긴다. 그러니 있는 힘껏 코를 풀 수 있는 것이다. 공중그네도 만찬가지 일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비우는 일. 가장 좋은 예가 이라부다."


"고름은 째서 짜버려야 빨리 낫는 법이야. 피도 조금 같이 나오긴 하지만."


[감상평]

주변 사람들이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라고 물을 때 너무 흘려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아이가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며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피해받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사람을 들여다보기 좋은 도구, 소설


나는 소설을 잘 챙겨 읽지 않는 사람이지만, 읽고 나면 참 좋다. 특히 소설은 함께 읽고나서 나누는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더 매력적이다. 이번에 새벽북클럽에서 함께 읽은 <공중그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이게 뭔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금방 이라부에게 빠져들었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아무리 친한 사람도 그 속내까지 온전히 알기는 어렵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내 마음이 어떤지 조차 모르고 넘길 때가 많다. 이건 순전히 내 얘기다. 내 마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느껴져서 애써 외면하게 되는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 <공중그네>를 통해 나는 내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라부가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통쾌함도 함께 느꼈고.


그런 점에서 볼 때, 다양한 상황과 여러 사람의 관점이 두루 담긴 '소설'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기 정말 좋은 도구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요일을 고대하는 엄마들을 초대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