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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과수 Apr 18. 2020

4월엔 편지를 쓰겠어요

텅 빈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기까지

텅 비어있는 하얀 페이지에 커서가 깜빡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1월 15일 이후로 멈춰버린 브런치. 구독자는 계속해서 늘었지만 나는 쉽사리 새 글을 쓰지 못했다.

지난겨울, 차가운 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마음이 동면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나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을 달래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기 시작했다.


'다 지나간다'는 말은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그땐 마치 그 감정이 영원할 것처럼 너무 나를 짓누르거든. 차라리 이유라도 속시원이 알면 좋으련만, 나도 나를 몰라 더 갑갑해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끝없는 도돌이표를 그리며 그렇게 하루를 살았더랬다.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는 갑자기 운동과 함께 아침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었던 것들. 매번 이유를 대며 이리저리 빠져나가기 일 수였다. 누굴 위한 도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은 쉽지 않고, '꾸준히'는 더 어렵다. 그런데 쉽지 않고 어려운 것을 나는 어쩌면 너무 단번에 잘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 가쁘게 살았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간신히 돌아온 나에게, 왜 이것까지 하지 못했냐고 타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가 너무 가엾어서. 나조차 응원하지 못한다는 건, 절벽 끝에 간신히 서있는 자신을 제 손으로 밀어버리는 꼴이니까. 그래도 꼭 잡아줬어야지. 설사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런다고 해도, 나 만큼은 괜찮다 말해줘야지. 가혹하다 참말로. 


그렇게 나의 상태를 자각을 하게 된 뒤부터, 매번 뒷전이었던 것을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잘 먹는 것과 운동이었다. 대신 너무 애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너무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레시피가 담긴 책을 잔뜩 주문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수많은 방법보다 본질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채소는 최소한으로 조리를 했을 때 몸에 더 이롭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레시피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지금은 다행이도 아침을 챙겨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차츰 건강한 일상을 되찾게 되자, 나의 몸과 마음도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너무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땐 알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나의 마음을 구하리라고는. 


퇴근 하는 길, 살짝 열어둔 버스 창문 사이로 짙은 풀내음이 코끝을 휘감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밤공기가 두렵지 않다. 겨울 지나 봄이 왔고, 언제든 나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른다. 오랫동안 놓고 있던 펜을 들어 다시 소식을 전해야겠다. 당신의 요즘은 어떻냐고, 그렇게 안부를 꼭 물어야겠다. 그대도 나처럼 봄을 힘껏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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