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에는 주방에 작은 창이 하나 있다. 아쉽게도 풍경이 아니라 시멘트 담벼락이지만 날것의 벽돌이 보여서 그런지 어설프게 보면 제주도의 돌담 같기도 하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낮에도 어두컴컴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디작은 창이 좋은 이유는 '바람'이 불어와서다.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그 순간순간 각 계절과 날씨에 따라 각양각색의 바람이 이 창을 타고 들어와 나에게 닿는다. 보통 기분이 좋다고 느껴질 때는 당연 '아주 적당하게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이 불 때다. 그 바람을 맞고 있으면 그 어떤 디저트를 먹을 때보다도 달콤하고 마음이 사르륵 녹아버린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럼 모든 감각이 바람이 닿는 촉감에 집중되고, 바람이 불어온다는 사실을 넘어 어떻게 스쳐가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땡볕은 물론 덥고 따갑지만 그늘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여전히 밤에는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되는 6월의 여름은 이상하지만 좋다.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 담긴 맛있는 문장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며 시작한 하루. 어김없이 아침을 준비하며 떠오른 이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