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은 5%가 최대치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2%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에반이 틀렸을리 없었다. 도시 공학자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건축가보다 전문가다. 에반은 우리 오피스와 함께 일하는 도시 공학 컨설팅사의 엔지니어다. 우리는 로스 앤젤레스 근처 팜 스프링스에 지어질 건물의 야외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었다. 5%니 2S%니 하는 것은 우리가 조성할 야외공간 평지의 최대 경사율이었다. 아주아주 큰 메인 건물에서 약 10미터 떨어진 자그마한 오두막으로 이동하는 길이 최대한 5%까지 기울어질 수 있다는게 에반의 말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평평해 보이지만 은근히 기울어 있다. 5%면 어느 정도일까. 두 건물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면, 총 10미터 떨어져 있으므로 길의 시작점은 끝점보다 0.5미터 높거나 낮다. 50센치면 그 흔한 30센치자 두 개를 붙인것보다 적은 거리다. 10미터에 겨우 그 정도의 고도 변화라면 예민하게 감각을 날새우지 않는 이상 알아채기 어려운 경사일 것이다. 하지만 100미터라면 어떨까. 총 100미터를 이동할때 5%의 경사는 5미터의 고도 변화를 동반한다. 길이가 늘어났으니 고도 역시 늘어나는게 당연하지만 5미터라는 사람 키의 두배를 훌쩍 넘어가는 스케일은 50센치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평평해 보이는 바닥이 사실은 미세하게 기울어 있다 - 그걸 처음으로 알게됐던 날 들었던 숫자가 2%였다. 2%는 그러나 배수를 위한 경사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사실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굉장한 놀라움이었다. 빗물에 조금이라도 노출 되는 공간이라면 반드시 2% 기울어진 평면으로 설계된다.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도 물을 사용하는 방이라면 - 욕실이나 레스토랑의 대형 주방처럼 - 그 바닥은 2%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모든 경사면의 종착역은 은색 그릴로 덮힌 배수구다. 물은 그런식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이동하게 되어있다. 도시라는 공간이 그런 공간이었다는 점이 내 놀라움의 이유였을까. 물을 쏟으면 대충 닦아서 시간이 좀 지나면 증발하고 없어지는 거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거라 여기던 생각은 참 태만했다.
그 2%라는 경사율은 참 흥미롭다. 보통 그 정도로 작은 숫자는 채워 없애야할 결함, 혹은 남아있는 과제로 인식되는게 일반적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는 말인데, 그게 잘못된 편견이라면 나는 정우성 전지현 탓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깨지기 직전의 커플의 모습에 포개지는 2% 부족할때... 하는 광고가 광고답지 않게 그렇게 히트를 치고 입에 오르내렸던 그 기억 탓이라고. 그게 터무니 없다면 늘상 쓰는 컴퓨터의 파일전송 등의 테스크 상태 표시 창이 98% 언저리에서 세월아 내월아 하는 모습에 복창이 터지는 일상들의 중첩의 중첩 탓이라고. 어찌됐던 그런저런 과거의 이미지들에 힘입어 '2%'는 미완성이고, 결핍이고, 따라서 결국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건축에서 마주하는 2%는 그와 완전히 정반대다. 그것은 기능적으로 필수적인 2%다. 2%의 경사 덕분에 빗물이 고이지 않는다. 100분의 2에 해당하는 기울어짐으로 욕실은 뽀송뽀송할 수 있다. 물이 없는 세계를 가정한 뒤 완전한 평평함을 이상적인 상태로 본다면 2%의 경사는 은근하면서 은근히 거슬리는 결함일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비가 내리기 마련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2%는 반드시 필요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바닥을 세상이라는 말로 두리뭉실 대체하자면, 세상은 적당히 기울어진 덕분에 탈없이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그렇다면 5%는 무엇인가. 5%와 2%는 공존하는 경사도다: 2%가 배수를 위한 최대 경사도라면, 5%는 보행을 위한 최대 경사도다. 후자를 러닝 슬로프(Running Slope)라고 부르고, 말그대로 보행자가 걸어나아가는 방향으로 측정된 경사다. 그와 반대 방향으로 측정하는 배수를 위한 경사도는 크로스 슬로프(Cross Slope)다. 이 정도 맥락을 고려해보면 크로스 슬로프의 최대치가 러닝 슬로프보다 훨씬 낮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만에 하나 이해가 안됐다면 잠시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자. 크로스 슬로프가 커지는 상상. 걸어 나가는 오른발에서 왼발쪽으로 경사가 급하다면? 우리는 아마도 짝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혹은 되어갈 것이다.) 좀 더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인간은 산양으로 진화해 나갈지도 모른다. 가파른 절벽에 나란히 서 있는 산양들을 보라. 메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무게를 지탱하는 지점이 몸체의 상단에 있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메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가시지 않는 것은, 분명 추락해도 놀랍지 않을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산양이라면 크로스 슬로프의 최대치를 50%까지 높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게 가파른 언덕의 건축적 해석이 계단이다. 계단은 5% 이상의 러닝 슬로프를 담당하는 건축적인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장으로서 나는 논점을 일탈한 셈이다. 이제까지는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은근한 경사를 주제로 써내려 왔기 때문이다. 이 글을 계단에 비유하자면, 계단의 러닝 슬로프 방향으로 쭉 올라가다가, 갑자기 평평한 옆구리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그렇지만 뭐 - 옆길로 좀 빠지면 어떤가. 물리적 세계에서 내가 논점일탈을 하든 말든, 추상적 개념의 세계에서 러닝 슬로프 / 크로스 슬로프의 개념적 정의는 건재하다. 계단을 오르거나 내리지 않고, 수평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러닝 슬로프와 크로스 슬로프는 정 반대로 뒤바뀐다. 러닝 슬로프가 크로스 슬로프가 되고, 크로스 슬로프가 러닝 슬로프가 된다. 러닝은 제로, 크로스는 계단만큼 가파르다. 산양의 세계에 들어왔다고 할까.
영화에서 계단을 미친듯이 뛰어오르는 도망자와 추격자는 익숙하지만, 계단을 수평방향으로 미친듯이 내달리는 추격씬은 거의 없다. 아마도 두가지 이유에서일텐데, 일단은 수평 방향으로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계단의 존재 이유가 불분명하다는게 첫번째 이유. 두번째는 계단의 폭이(25 - 30cm) 두 발로 힘껏 내달리기에 너무 좁다는 것. 계단의 평평한 방향을 내달리려면 왼발은 높은 계단을, 오른발은 낮은 계단을 디디며 달려야 할텐데, 그러려면 '내달린다'는 말이 무색해질만큼 어색한 뜀박질이 될게 뻔하다. 속도감도 박진감도 잃은 추격씬은 더이상 추격씬이 아닐 수 밖에. 물론 - 인류가 산양으로 진화하는 먼, 머나먼 미래라면 또 모를 일이다. 인간이 산양만큼 크로스 슬로프에 익숙해질 즈음 - 넉넉잡아 2만년 쯤 뒤에는 계단의 수평방향 추격씬 역시 심심찮게 보게 될지도.
평평해 보이는 공간이 사실은 기울어져 있듯이 시간도 그렇다면? 물이 2% 경사를 따라 흐르듯, 기울어진 시간 역시 기울어진만큼 좀 더 빨리 흐를지도 모를텐데. 저녁 5시 30분, 얼마전 끝난 서머타임에 맞춰지지 않은 지하철역 시계가 한시간 빨리 흐르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한시간의 차이, 아니 한시간의 경사. 실질 현재 시각 4시 30분, 현시점 시간의 경사도는 4.1%이다. 5%가 되지 않는다. 즉, 평지의 러닝 슬로프 최대치의 관점으로 보자면 시간은 여전히 평평하다. 산양인류의 세계를 살아생전 보기엔 역부족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