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Tate Modern
두달 전쯤 구입한 면바지에 지퍼가 없다는걸 며칠 전에야 알았다. 허리춤이 고무밴드로 되어 있다보니 입고 벗는데 굳이 지퍼가 필요하진 않았다. 그래도 속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지퍼를 덮는 부위가 흡사 지퍼식 바지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늬만 지퍼식 바지였던 셈이다. 이 겉다르고 속다른 바지의 장점이라면 여느 지퍼 없는 바지처럼 탈착이 쉽고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면서도 지퍼식 바지가 보여주는 격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옷 뿐만 아니다. 무늬 뿐인 것으로는 건축 역시 빠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다. 바지 한벌에도 디자이너의 고심과 생산 공정의 조정 등 적잖은 공이 들었겠지만 건축만 할까. 이 미술관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HdM)부터 건축주로서의 영국 정부, 런던 관할 관청, 주민들, 시공사 등이 전방위로 합심한 결과물이다. 구관과 신관 중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 것은 신관이다. 피라미드의 네 모서리가 꽈배기처럼 베베 꼬이며 올라가다가 윗둥이 싹둑 잘린 형태의 건물은 2016년 오픈했다. 1950년경 발전소로 지어졌다가 개축된 구관은 그에 반해 네모 반듯한 모양이다. 70여년의 시간차에다 형태적으로도 대비가 극명한 구관과 신관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벽돌로 덮힌 건물 외벽이다. 신관의 외벽 벽돌의 색상과 질감은 구관의 그것과 이질감이 전혀 들지않는다.
시각적으로는 통일감을 주는 벽돌 외관이지만 신관의 벽돌은 사실 진짜 벽돌이 아니다. 입면상으로 보면 감쪽같이 벽돌 크기지만 그 두께는 훨씬 얇은 패널이다. 벽돌 느낌이 나는 패널들을 벽돌과 같은 크기로, 전형적인 벽돌벽의 간격과 배열에 따라 붙여놓은 것이다. 나는 이 무늬만 벽돌식 미술관에도 역시 속았었다. 테이트 모던을 직접 처음 본 것은 2008년, 마지막으로 본건 2019년이었다. 그 모든 시간을 통틀어 벽돌을 의심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음해인 2020년에 건축 공부를 시작한 뒤에야 그 진실을 알았으니 자그마치 12년 동안 나는 진실의 외곽에 거주한 셈이다.
12년이라니. 고작 두달 지속된 바지 지퍼의 허위쯤이야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일이다. 하지만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그 농담이 남기는 메시지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디자인에 있어 기능과 무관한 시각적인 요소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당장 지퍼덮게를 가위로 오려낸다해도 바지는 여전히 바지이고, 테이트 모던의 벽돌 패널들을 싹다 걷어내도 건물의 기능적 운영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굳이 지퍼도 없는 바지에 지퍼 덮게를 덧붙이는걸까. 강철 프레임이 실질적 구조체 역할을 하는 건물이 왜 70년 묵은 벽돌 타일로 덮여야만 했던걸까. 그건 어떤 대상의 기능적, 물리적 실체 만큼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기인하는 추상적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패션이 개성과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특정 직종에서는 정장(즉 '지퍼'로 허리춤을 여닫는 바지)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한다.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건물 면적에 따른 부동산 가치가 전부인듯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축적된 시간과 문화의 무게를 담아내는 미관은 건축물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무늬만 지퍼식인 면바지는 지퍼의 기능은 잃었지만 거기에 부여되는 격식은 잃지 않는다. 테이트 모던의 벽돌 무늬 외벽은 어떤 구조적 하중도 지탱하지 않지만, 20세기 중반 런던의 역사적 무게를 지탱한다. 좋은 건축은 그러니까 기능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가치도 담아내는 건축이라 말해도 좋겠다... 하고 모범 답안 같은 문장을 쓰는 즉시 반례들이 떠오르는데 - 청와대의 육중한 지붕을 들여다 보자. 청색 기와로 덮힌 구조체는 흡사 목조 지붕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재료는 철근 콘크리트다. 더 기능적인 현대적 재료를 사용했지만 목조 지붕 형태에 깃든 전통을 담아냈으니 청와대 또한 테이트 모던처럼 좋은 건축일까? 지금 내가 작업 중인 팜 스프링스의 오두막은 그렇다면? 이 지역의 문화적 색채를 살리기 위해서 목재 들보와 서까래를 쓰고자 했지만, 결국 철재 프레임으로 대체되었고 프레임을 나무 느낌이 나는 클래딩으로 덮어 무늬만 목재가 될 예정이다.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몰라도, 내 바지의 남대문과 진짜 남대문(숭례문)의 공통점은 알 것 같다. 두 남대문은 하나같이 유명무실하다. 전자는 열리지 않아서고, 후자는 닫히지 않아서다. 숭례문을 볼때마다 저긴 벽도 없는데 문이 왜 있는건지 의아했다. 조선 시대에는 문 양쪽으로 한양 도성의 벽체가 둘러져 있었지만 이제는 없다. 애시당초 막혀있지 않은 곳에 문이 필요한가? 벽을 잃은 문은 문으로서의 기능도 잃는다. 남대문은 물리적 공간을 이어주는 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 그리고 시간을 이어주는 역사적인 문으로 재탄생했다.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 문이 열어주는 공간은 수백년 전 한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