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예술 감독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 말
평소 흠모해왔던 예술 감독의 인터뷰를 편집하게 됐다.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철학적이고 또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있는 분이기에(그가 쓴 책들만 봐도 그렇다) 나는 오역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지만, 나름 학부시절부터 갈고 닦아온 불어 실력과 더불어 동종 분야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됐기에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의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이방인이 되어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이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튀어 나왔냐면... 중년의 남성일지라도 자신은 페미니즘에 대해 사유하고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몰매를 맞을 수 있는 도전이지만 늘 자신을 이방인으로 둘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는 의미에서다. 그가 자신의 논지 끝에 둔 저 문장이 글을 편집하는 순간에 내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도착하고 보니 가장 큰 잔상이 된 게 아닌가.
이 말은 현재의 나를 긍정하고, 이 상황에서 외로움을 온몸으로 껴안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사유하게 하는 힘이 됐다. 우리는 더불어도 살아가지만 삶과 죽음에 있어 홀로 오가는 존재이기에 외로움은 늘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내가 쌓아온 커리어와 능력, 네트워크와 친목 등의 '관계'와 함께하기 어렵다면... 이방인이 된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시점에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됐다. 이방인이라는 처지, 환경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그것을 하나의 시야로 장착해 이 도시를 다시 보는 일이다. 낯설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짜릿하고, 강렬할 수 있는 풍경이 이방인인 나에게 어떻게 각인되는지 이곳의 거리와 공공물, 사람들과 환경까지 기록하는 것. 인상으로 남은 그것들에 리서치라는 날개를 달고, 이를 창작물이자 출판물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사진처럼, 이 순간의 온도와 감각까지 담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나는 곧장 디자이너인 남자친구에게 공유했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통해 이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