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출판물을 적극 수용하는 노인들을 보고 떠오른 단상
네덜란드는 출판과 편집 디자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출판과 편집, 디자인을 위한 좋은 교육 기관들이 자리하고 있고, 만듦새가 훌륭한 책을 제작하는 출판사들이 선도하며 출판 문화를 진두지휘한다.
이들은 책을 정의하는 기준을 늘 고민하고 탐구하며, 단순히 책뿐만 아니라 읽는 방식, 읽기를 통해 습득한 정보와 텍스트를 수용하는 방식, 읽기의 트렌드 등을 폭넓게 연구하는 듯 하다. 글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책이 아닌 글에서 뻗어나온 모든 이미지를 경험하게 하는 과정에 심혈을 기울인다.
출판 문화에 관심이 있는 나는 이곳에 와서 아트, 디자인 서적을 취급하는 몇몇 개의 서점에 다녀왔고, 엊그제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북 디자인 어워즈인 'The Best Dutch Book Design' 의 2023년도 선정작들을 살피기 위해 스테델릭 뮤지엄에 다녀왔다. 취재 차 방문한 것이었지만, 큰 영감을 받았다.
전시장에서 훌륭한 책들을 들고 한장 한장씩 넘겨보며, 나는 책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다음 책을 집어드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러던 찰나, 문뜩 나처럼 책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관람객들은 누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주변에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들이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출판이 문화가 될 때 어떤 것들이 자리잡게 될까? 그리고 전문가, 관련 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출판을 즐기게 될 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까? 단순한 책의 존폐여부가 아니라, 요즘 세대가 책을 너무 안읽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문화 안에서 '출판'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시선을 돌렸을 때 그 영역은 얼마나 다양하게 이야기 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일하던 직전 잡지사에서 나는 튀는 색상으로 지면을 구성했을 때 독자들의 불평을 들은 바 있다. 불평의 내용은 "색이 너무 요란해서 글이 읽히지 않는다.", "색이 화려하면 근엄한 맛이 없고 묵직하지도 않다. 그것이 잡지의 무드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주요 독자층일 수 있는데 이렇게 배려 없는 구성을 하다니?" 등 일률적이고 획일화된 판단에 가까운 불평들이다.
왜 별색을 넣었는지, 그 색을 쓴 게 전체적인 톤을 구성하는데 왜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친환경 종이를 사용하게 된 이유와 인쇄의 과정에서 색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 지 등, 나는 독자와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슈테델릭뮤지엄에서 갖가지 색상과 독특한 종이 질감, 바인딩 기술과 콘텐츠 구성이 즐비한 책들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중년의 신사들, 그리고 선정작을 구입하기 위해 뮤지엄 서점을 서성이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출판물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이들이 많은 네덜란드. 이곳에서 출판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이곳에서 내가 집중하고 싶어지는 주제들이 많아진다. 앞으로 집중하고 싶은 주제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