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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두산 Sep 02. 2023

‘나’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나는 인도라는 낯선 땅에 건너갔다. 잠시 한 두 달 여행을 위해서가 아닌 대학교에 진학해 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시험을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통과한다고 해도 최소 5년 6개월을 인도에서 살아야만 하는 큰 모험이었다. 한 번의 여행과 5개월 정도의 어학연수를 통해 인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지만, 역시 잠시 머물렀다 가는 것과 수년간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은 마음가짐에서부터 다르게 다가왔다. 그곳은 바닷가와 인접해 있었지만 우리나라 기후와 비교하면 훨씬 건조하고 뜨거웠다. 음식은 향이 강하고 기름져 소화가 어려웠다. 외식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던 첫 3개월은 자주 몸이 아팠다. 몇 번을 아프고 나니 살이 10킬로 가까이 빠졌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방식, 언어, 문화적으로 통용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로 다가왔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예민하고 날카롭게 됐다. 언성을 높이고, 말다툼을 하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나는 때때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껴졌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럼 그전에는 나를 알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나를 모르게 된 것일까. 아니면 계속 나를 알지 못했지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인지하게 된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인식한 ‘나’라는 사람은 주변에서 나를 규정짓는 표현, 교육을 통해 배우는 내용, 느끼는 감정, 생각과 행동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들의 경험을 통해서 ‘나’에 대한 일련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를테면, ‘나는 성실한 사람’, ‘나는 긍정적이다’, ‘나는 차분한 사람이다’ 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나’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의 총합이 ‘나’라는 사람의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며 여러 요인들의 영향으로 변할 수 있다. 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이미지들과 급격한 차이를 느끼는 순간 나는 나를 잘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인식하던 ‘나’와 현재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나’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질 때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스스로 알고 있던 나와 너무 다른 나를 만나게 되고, ‘나’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도 나를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내가 인식하는 나와 현재 나의 생각, 감정, 말, 행위 사이의 간격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라는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형성되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4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영혼, 마음, 몸, 감각기관이 그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나’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져왔다. 그러한 노력들은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때로는 주변 환경의 영향에 따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왔다.


    인도의 모든 철학은 영혼(참자아) 또는 아트만(Atman)을 알기 위한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 영혼을 알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길에 있어 ‘요가’는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택했다. 영혼을 명확하게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마음의 활동을 고요하게 함으로 맑고 고요한 물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듯 영혼을 보는 이론적 실천적 방법들을 적용했다. 영혼을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는 진정한 ‘나’를 알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직관적으로 이렇게 이해한다. 눈을 감고 몸을 없앤다고 상상한다. 마음을 없앤다고 상상한다. 고요히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그럼에도 인식할 수 있는 ‘나’가 남아있다. 그것을 일종의 ‘영혼’이라고 느낀다. 모든 것을 제거하고도 남아있는 ‘나’를 나로 만드는 무언가 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알기 위해 이전에는 혈액형을 물어보곤 했다. 이제는 MBTI를 많이 묻는다. 성격유형검사에는 MBTI뿐만 아니라 기질 및 성격검사(TCI), 다면적 인성검사(MMPI-II), 성격 강점 검사(CST)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요가에서나 아유르베다에서 또한 마음의 성질을 세 가지, 사뜨와(Sattva)-라자스(Rajas)-따마스(Tamas)로 나눈다. 사뜨와(Sattva)는 순수하고 밝고, 긍정적이며, 기쁨과 열정 등의 유익한 특성을 갖는다. 반면에 라자스(Rajas)는 즐거움, 애착, 욕망, 분노, 증오 등과 같은 감정의 원인이 되고, 따마스(Tamas)는 무지, 어리석음, 소심함, 무활동을 담당하는 특성을 가진다. 아유르베다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성질에 따른 마음의 체질 유형을 다시 16가지로 나눠 각 마음의 유형별 특성을 자세하게 묘사해 놓기도 했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내 몸을 이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흔히 '체질'을 통해 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다. 아유르베다에서는 와따(Vata), 삐따(Pitta) 그리고 까파(Kapha)라고 불리는 물질의 비율에 따라 몸의 체질을 구분한다. 크게 7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체질을 이해함으로 내가 타고난 몸의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 꼭 체질로 구분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먹는 음식에 따라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생활방식과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몸을 관찰할 수 있다. 이렇게 내 몸을 꾸준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이 몸을 가진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동-식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런 영향은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나’와 더욱 가까워지고 안정감을 느낀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나는 ‘나’와 멀어지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생각과 감정과 말과 행동이 어디에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알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들과 어느 환경 속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 또한 나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기준은 내 몸과 마음이다. 내가 느끼기에 편안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

    아유르베다에는 몸의 체질과 마음의 체질이 있다. 몸의 체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체질은 변한다. 아니,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이고자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꾸준한 배움과 경험 그리고 성찰을 통해서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수행자가 될 필요는 없다. 시작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서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어떤지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생활해 보는 경험이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제공할 수 있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어느 정도 있어야 비교가 가능하다. 굳이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된다.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하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비교 대상을 늘릴 수 있다. 몸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할 수도 있다. 먹는 음식의 변화에 따른 몸의 변화, 생활 패턴의 변화에 따른 몸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기준은 내 몸과 마음이다. 내가 느끼기에 편안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알아가고 ‘나’와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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