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so May 08. 2024

금수저? 꽃수저!

꽃수저의 어버이날


 매년 이맘때처럼 꽃을 팔러 가게에 나와있다. 내가 갓난쟁이일 때 부모님은 꽃집을 시작하셨고 내 나이가 만으로 서른을 넘겼으니 우리 꽃집, 장미꽃농원도 만 30주년을 넘긴 장수가게가 되었다.  더 이상 특수랄께 없는 요즘 꽃집들에게 어버이날은 거의 유일하게 바쁜 주간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딱 중간고사 시점인 요 시기에 시험이 끝나면 꽃을 팔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5월 황금연휴를 반납하고 꽃집에서 알바를 하고는 했다. 퇴사를 하고도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5월 어버이날 알바주간은 다가왔다.

 초등학생, 중학교 시절에는 편의점 납품꽃 수백 개를 만들고, 새벽까지 마치 오징어잡이 배처럼 전등을 우수수 달아놓고 꽃을 팔았던 기억이 있다. 밤 12시까지 손님들이 왔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꽃바구니 배송이 하도 많아 배달기사에 엄마, 아빠, 삼촌까지 총 출동하여 아침에 배달 동선을 따 꽃바구니를 열댓개씩 들고나가고, 나는 바구니에 달 리본 수십개를 끊임없이 뽑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새는 없는 경기 탓인지 꽃바구니 배송주문도 그리 많지 않고 간간히 오는 손님들도 많이 줄어, 앉아있을 새가 없었던 것과는 달리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손님을 기다리며 이렇게 글쓰기까지 할 수 있는 정도다. 올해는 거기다 새찬 비바람까지! 첩첩산중이라고나 할까.

 세상엔 너무도 많은 꽃집들이 있고, 또 심지어 꽃집이 아닌 다이소, 편의점, 마트 등 거의 온 세상에서 카네이션을 파는 이 시장에서 우리 꽃가게가 차별화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0년 꽃집딸의 관점에서 우리 집 꽃은 사실 너무도 차별화되어 있다. 주 3회 서울 새벽시장에서 공수된 가장 싱싱하고 좋은 꽃들로, 센스 넘치는 30년 장인이, 행복한 마음을 담아 만드는 꽃들이기 때문이다. 새벽 4시 반에 나와 밤 8시까지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하면서도 룰루랄라 꽃을 만드는 분이 하사장님이시다. 거기에 중간중간 들어오는 전화주문, 방문주문, 협회주문까지 모든 것을 처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거의 꽃장사의 달인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잠깐 들러 만 원짜리 카네이션을 사가는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그들이 만원을 값을 내고 사가는 것은 단순한 카네이션이 아닌, 30년의 장인정신이다.

30년 장인정신이 담긴 꽃다발과 꽃바구니


 꽃집딸에 대한 자부심은 상품 그 자체에도 있지만 나의 삶의 많은 경험이 이곳에서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삼십 년 평생을 꽃과 나무에 둘러싸여 살았고, 일하는 부모님을 보고 또 옆에서 도우며 셈과 경제관념을 익혔다. 누군가 나를 인사성이 밝고 친절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아마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체득한 예의범절일 것이다. 그리고 새벽시장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가게운영을 보며 근면함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이렇게 꽃집딸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의 주요 아이덴티티였고 난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학교 다닐 때는 "우리 엄마 꽃집해!"가 자기소개였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제가 꽃집 딸이어서요"라는 소개는 조금만 친해지고 나면 누구든 알고 있는 나의 주요 정보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소개로 내가 다니던 유치원, 학교, 심지어 회사까지도 우리 꽃을 써오곤 했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도 그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나는 꽃집딸의 정체성을 알리길 주저하지 않았는데, 입사초기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소개가 마치 거래처를 욕심낸 신입사원의 과욕으로 비쳐 예상치 못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너무 어렸던 나는 저희 꽃이 예뻐요,라는 말이 상대에게 욕심쟁이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차마 못했던 것이다. 훗날 뒷말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고 사회생활하는 법을 한 가지 또 배웠다.
 
 이렇게 자랑스러워 한 꽃집딸이란 정체성은 최근 센스 있는 회사 동료의 '꽃수저'라는 말로 재탄생되었다. 식물 이야기를 하다가 꽃집딸임을 밝힐 순간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오, 꽃수저네 꽃수저!"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재밌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찰떡같은 표현이다. 난 거진 태어날 때부터 꽃집 딸이었고 그 덕을 보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엄마에게 어릴 적 나를 키우며 장사꾼의 자식이어서 혹여 누가 나를 업신여기면 어쩌나를 걱정하고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꽃수저임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겨왔기에 엄마의 그런 걱정이 놀랍고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우리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프라이드가 강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꽃집 딸이지만, 꽃집 딸이기에 혹여나 상처받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 나 그냥 꽃집 딸이 아니야, 꽃수저라구 꽃수저!!

장미꽃농원, 하사장님의 꽃들


작가의 이전글 95번째 월급을 받고 떠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