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방울 Sep 13. 2022

다시 법서를 펼치기까지

#10.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이 되어 로스쿨로 돌아가기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온 직후 로스쿨 첫 학기를 시작했다. 사정상 남편은 호주에서, 나는 한국에서 각자의 학업에 집중하면서 화상통화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간 남편과 다툰다거나 소원하게 지낸 적이 없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일 거다.


로스쿨에서는 아무래도 아침부터 밤늦게, 또는 새벽까지 같이 공부하면서 3년을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 감정이 싹트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일부는 졸업하고 결혼함으로써 평생의 연을 이어가기도 하고, 일부는 같은 캠퍼스 안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기도 한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기혼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한 나는 그런 설렘과 질풍노도의 세계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가끔씩 어떤 비밀커플에 대한 목격담, 이별 소식 등의 가십을 전해 들으면 "진짜?"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반응하기도 하면서.   


남편은 장인어른과 약속한 대로 학부 졸업장을 받고 나서 일자리를 구해 나에게로 왔다. 로스쿨 2학년 1학기 과정이 3분의 2 정도 지난 때였다. 그리고 기말고사 기간에 임박해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여름방학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아기들과 함께 맞이했다. 순식간에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이 된 것이다.




아기들이 한창 아기침대에서 꼬물거리던 50일 즈음, 나는 손바닥만 한 기저귀를 주기적으로 갈면서 두 가지 중요한 결심을 했다. 첫째, 로스쿨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공부를 마칠 것. 둘째,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주인아주머니가 아래층에 거주하며 수시로 헛소리를 하는 전셋집에선 어떻게든 벗어날 것. 두 가지 모두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서 선뜻 내리기 쉽지 않은 결단이었는데, 막상 실행으로 옮기고 나니 생각보다 잘 풀렸다. 돌이켜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는 후자였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몰랐던, 주인아주머니의 증상(벽 보고 혼잣말, 욕설, 세상을 향한 원망 또는 조롱)이 해지 사유가 되는지를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아주머니를 상대로 지난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묶인 전세 보증금은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날에 받되 일단 내가 가진 저축액과 전세 대출금을 합해 집을 얻어보기로 했다. 반년 전 과오에 대한 뼈아픈 학습 효과로, 이번에는 네이버 부동산을 수시로 확인하며 부지런히 매물을 보러 다녔다. 로스쿨까지 도보로 통학이 가능하면서도 아기들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깔끔한 집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분양 목적으로 나온 신축 아파트형 빌라에 운 좋게 전세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로스쿨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 그전에 본 비슷한 조건의 다른 매물들에 비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자체에 감사해야 할 수준이었다. 건축주 직영이라 공인중개 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6개월 전 이사를 도와준 같은 업체 사장님께 연락드려 부랴부랴 짐을 옮겼다.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이 가고 봄 햇살이 찾아오던 무렵, 그렇게 '그 집'을 벗어났다. 기적 같은 일은, 이사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어느 독거 할머니가 그 집을 보러 와서는 마음에 든다고 덥석 계약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은 일이다. 할머니가 집을 보러 오셨을 때, 나는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주인아주머니의 독특한 증상을 발설할 양심 내지 용기는 차마 내지 못했다. 지금도 그분께는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점이다(…).


아기들이 태어나자 남편은 전일제로 근무하던 원어민 강사직을 그만두고, 몇 군데를 돌아다니는 파트타임 티칭 잡을 대신 구해 간신히 생활비를 보태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에 할애했다. 이사를 마친 뒤에는 호주에서 시부모님이 오셔서 둥이 육아에 합류했다. 아버님은 2주 뒤에 일하러 본국으로 가시고, 이미 정년퇴직하신 어머님은 관광비자가 허용하는 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기로 하셨다.


나로서는 2학기 복학을 앞두고 모처럼 다시 법서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호주 어머님의 양해를 구해 당분간 오전 시간만이라도 공부할 시간을 갖기로 하고, 학부 동문 중심으로 운영되던 아침 기상 스터디에 운 좋게 합류했다. 평일 오전 8시 정각 전까지 학교 스터디룸에 도착해 있지 않으면 일단 지각 벌금 5천 원, 정각으로부터 10분을 넘어서면 결석으로 간주돼 예외 없이 벌금 만원을 내야 하는 스터디였다.


그렇게 스터디룸에 도착해서, 거의 1년 만에 다시 민법 기본서를 펼쳐 페이지를 넘겨보던 때의 촉감을 기억한다. 더듬더듬 활자를, 중요 판례 문구를 다시금 읽어나가던 때의 묘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이벤트를 준비도 없이 맞이하면서, 어느덧 시험기간에 날밤을 새우며 한 문장이라도 주워 담으려 아등바등했던 로스쿨에서의 시간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땐 단지 로스쿨에서 요구하는 엄청난 양의 공부를 제대로 씹어 소화하기가 버겁다는 이유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허우적댔다. 전문 트레이너처럼 운동에 능한 로스쿨 동생의 주도로 동기들과 탄천 운동장을 밤마다 열 바퀴씩 돌면서 체력과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런데 스스로 가정을 꾸려 졸지에 가족 구성원이 넷이 된 가장으로서, 또다시 학생 신분으로 기어코 로스쿨에 돌아갈 결심을 하고만 나는, 이제 학업은 물론이고 둥이 육아를 병행하면서 동시에 기저귀와 분유값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누나, 괜찮아요?" 

"응. 뭐가?"

"애 낳고 나면 머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데. 혹시 누나는 어때요?"


복학하면서 선택법으로 택한 국제거래법 수업시간. 내 옆에 앉은 같은 지도교수반의 한 동생이 악의 없이, 정말 순수하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수술할 때의 마취제의 부작용이라든지,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애를 낳으면 예전보다 기억력이 감퇴해서 자꾸 깜박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아, 난 아직은 잘 모르겠어. 괜찮은 것 같은데?"


적어도 내가 겪은 사실에 기초하자면, '출산하면 머리가 나빠진다' 속설보다는, '공부해둔 것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지도교수님의 조언이  와닿는 말이다.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2학년 2학기는 출산 전인 1학기보다 오히려 성적이 올랐다. 실제로 거의 1 만에 기본서를 펼친 날에도, 1  이해했던 법학 이론이며 판례는 조금만 더듬어도 문구가 익숙하게 떠오르며 친숙한 느낌이 물씬했지만, 1 전에도 헤맸던 부분은 여전히 막막하게 다가온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