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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방울 Sep 05. 2022

끝장난 줄 알았던 자퇴의 기로에서

#9. 로스쿨 1년의 공백과 가난의 엄습

뱃속에 품은 아기들이 점차 세상에 나올 태동을 보이면서, 살면서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차와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중고차를 사기 위해 처음 방문한 매장에서 남편과 나는 딜러 분이 권해준 세 번째 차를 보고 있었다. 갈색 곱슬머리에 앳된 인상인 남편은 한국말이 어눌한 외국인이고, 나는 사전에 뭔가를 부지런히 검색하고 검증할 기력 없이 어느덧 배가 남산만 해진 임신부였다. 단지 앞에 본 차들보다는 크기라든지 상태가 나아 보여서 -평소의 나답지 않게- 딜러가 제시한 가격 그대로 덥석 샀다. 고맙게도 딜러는 "아기들을 생각해서 추천드리는 안전한 차"라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순간 뱃속 아기들이 이렇게 속삭였는지도 모른다.  


'엄마, 그냥 사요 그냥 사.'


그 길로 차를 사서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사 갈 집을 고르는 과정도 비슷했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을 수시로 확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로스쿨 근처에는 원룸만 즐비하고 아기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주택은 마땅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학교 정문 건너편 오래된 주택가에 붙은 전세 매물 전단지를 가져오셨다.


거기에 기재된 부동산 중개사의 안내로 그 주변 전세로 나온 두 곳을 연이어 보기로 했다. 모두 방 세 칸에 층수는 2층이었지만, 집 전체가 일자형으로 구조가 다소 독특하고 계단이 가파르게 보이던 첫 번째 집보다는 아늑한 한옥 같은 두 번째 집이 나아 보였다.


남편은 그 집 안방의 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낡은 기와집들의 지붕선이 내뿜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었다. 집은 비어 있어 있어서 좀 더 널찍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긍정적인 눈빛을 간파한 주인아주머니는 "전세 들어오면 부엌 싱크대를 새것으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했다.


 "여기로 할게요."


자취집의 많지 않은 살림살이를 챙겨 가볍게 이사를 마쳤다. 아래층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스무 살 남짓된 딸, 이십 대 중반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의 남편은 몇 년 전 사업이 기울면서 사이가 소원해진 뒤 어디론가 떠나 소식이 끊겼다고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임신이 안정기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이사를 도와주신 뒤 친정집에 가 계시기로 했다. 영어유치원에 강사로 취업한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 오롯이 보내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럴 때 최신 판례 하나라도 머릿속에 입력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도 로스쿨에서의 고된 기억과 학업에 대한 부담감은 벌써 저 멀리 팽개쳐둔 채 낮잠을 자고 또 자고, 저녁이면 남편과 먹을 메뉴를 고민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 정적의 한가운데를 깬 고성을 처음 듣게 된 건, 이사하고 이삼 주쯤 지난 뒤였나. 바깥에서, 그것도 집 아주 가까이에서 중년 여성의 거친 음성이 들렸다. 동시에 단단한 도구로 벽을 치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 진동으로 느껴졌다.


"야이 씨X, 이 XX들아 다 죽을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창문 너머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재개발이 임박했다고 알려진 한낮의 주택가는 유난히 인기척이 드물었다. 길고양이 몇 마리가 서성일뿐, 소리를 지르는 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좁은 골목에서 혼자 벽을 보며 고래고래 욕설과 함께 고함을 치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주인아주머니였다.


눈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 없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꼭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거나 싸우는 듯했지만, 실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10대 소녀들이 지나가는 마냥 상냥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 아주머니의 고성이 쩌렁쩌렁 울려도, 이웃 어르신들은 이미 익숙해진 건지 나와보지도 않았다.


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만 해도 임대인의 그런 증상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던 것이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늘상 그런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중요한 계약서에 날인하는 순간에 실은 임대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직전에 중개사가 살짝 찔러준다든가, "나는 미친 사람이오" 스스로 고백할 리도 만무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 앞에서 들리는 거친 욕설과 세상을 향한 원망 등을 들으면서, 가뜩이나 휴학하고 나서 왠지 억울하고 막막하기 이를 데 없던 나의 불안 심리가 폭발했다. 귀를 막거나 음악을 틀어놓아도, 음악을 정지하는 순간 불현듯 들려오는 저주에 나 자신도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기자로 멀쩡하게 일하다가, 변호사 좀 돼보겠다고 나대더니 내 인생도 이렇게 나락이구나.


어느새 혹독한 겨울이 되고, 아직 기름보일러를 쓰고 아직 주인아주머니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던  집은 기름을 채워 보일러를 돌리고 돌려도 '하아' 불면 입김이 서릴 정도로 냉기가 돌았다. 그런 와중에도 아기들은 내가 '이제 그만 나와도 되겠다' 마음속으로 허락한  너무나 순탄하게 방을 빼주었다.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일주일 연장에 드는 추가 요금 100만 원이 아까워 아기들을 꽁꽁 싸서 그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가진 돈이 아기들과 생활을 꾸리는데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 것은. 맘 카페에서 나눔 받은 큼직한 아기침대에 아기들을 눕히고, 100일까지 삼교대(남편-어머니)를 하며 부지런히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였다. 아기들 방에는 전기 난방기를 따로 틀고 안방 침대에는 난방 텐트를 세웠다. 이따금 바깥에서 욕설을 동반한 주인아주머니의 중얼거림이 들려올 때면 아기들이 듣고 영향 받을까 봐 재빨리 클래식 음악이라도 틀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로스쿨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산모의 몸 상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신생아들을 보살피는 동안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적어도 새로운 커리어를 꿈꾸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이었다.


그쯤 되자 남편은 기자를 다시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그런 제안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휴학에서 자퇴로 무게가 실렸다.


결단을 내리고 답을 해주기까지는 일주일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따르며 서포트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다.


"나 일단은, 완주해보고 싶어. 변시 보고 나서 떨어지더라도 그때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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