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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방울 Sep 04. 2022

입덧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왔을까?  

#8. 로스쿨 휴학계를 내던 그때 그 순간

둥이 임신을 진단받았다. 그것도 로스쿨 과정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2학년 1학기 끝자락에 말이다.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친정 부모님 댁으로 기어가다시피 해서 이상신호를 부지런히 보내던 몸을 가까스로 누였다. 입덧 완화 약물로도 효과를 보지 못한, 지독한 입덧이 극에 달한 무렵이었다.


하루는 피가 비치기 시작하더니 부인용 패드를 가득 적실 정도로 하혈을 했다. 병원에서는 유산 가능성이 있다며 일단 입원해서 안정을 취하자고 했다. 유산 방지주사를 맞으면서 며칠 지나니 괜찮아진 것 같아 퇴원했는데, 그날 밤 샤워 도중 다시 피가 철철 쏟아지는 것이었다.


"아… 안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병원행을 택했다. 당직의사는 신속하게 아기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긴장감이 떠오른다.   


"괜찮습니다. 둘 다 심장이 잘 뛰고 있어요."

"…."


사실 나는 아직도 '엄마'라는 호칭이 어색할 정도로 스스로 '부족한 엄마'라는 인식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 순간 기왕 품은 두 생명을 꼭 살리고 싶다고 열망하는 자신과 조우할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갖기도 힘들지만, 가진 다음 자연 유산 확률도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토악질만 해대니 나날이 야위어갔다. 로스쿨에 입학한 이래 좀처럼 만날 수 없던 친구들이 입원실로 찾아와 모처럼 수다 떠는 시간을 가질 수 있던 건 유일한 위안이었다.


거의 개강 직전에 이르러서야 자취집으로 돌아와 학사정보 시스템에 접속해 내키지 않던 휴학을 신청했다. 가뜩이나 30대 중반에 로스쿨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학업을 중단하게 될 줄이야. 로스쿨 3년 전체가 불안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지만, 2학년 2학기는 특히나 형사재판실무 같은 중요한 과목을 들으면서 변호사시험 대비에 한층 가까워지는 시기이다.


유산 가능성을 떠올리며 조용히 신청 버튼을 눌렀다. 시험기간에 겪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뱃속 아기들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거니와, 아기들이 버텨줄지가 의문이었다. 새벽 편의점이  호황인, 지긋지긋한  동네를 나보다 먼저 벗어날 동기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만약 둥이가 아니었다면, 하혈과 입퇴원을 반복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학기를 버티고 아기를 낳은  3 공부에 올인할  있지 않았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그런 생각도 스쳤다.


휴학계를 내고 임신 중기에 들어서자 놀랍게도 입덧이 멈추고 본격적으로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두 생명을 품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자취집을 빈번히 오르내리기란 위험천만한 일이 되었다.


입덧이 멈췄으니 평화가 찾아왔을까?


나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제대로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차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 여전히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머니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고 나오는데, 갑자기 숨이 차서 어머니께서 근처 택시를 불러 겨우 집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아찔한 기억이란.


"누나, 이참에 부족한 과목 보강한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동영상 강의 들어둬요."


로스쿨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동생이 임신 및 휴학 소식에 해준 조언이다. 의사 출신으로, 공중보건의사 복무를 마친 뒤 결혼과 동시에 법조인의 꿈을 찾아 로스쿨에 온 그 동생은 같은 분야 기자 경력이 있는 나와 금세 친해졌다. 나중에 산후조리원에도 깨알 같은 공부법을 전수해주러 방문해준 고마운 동생이다. 


어렴풋이 무리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노트북 전원을 켰다. 과목은 다음 학기 형사재판실무 대비를 위해 형법으로 정했다. 2회차 강의 중반쯤에서 숨이 차올라 침대에 누웠다. 듣기라도 하려고 침대 옆으로 노트북을 옮겼다. 다시 재생 시작. 언제인지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 동생이 훗날 산후조리원에서 들려준 변시 준비 팁은 무척이나 유용하게 써먹었는데, 동영상 강의로 부족한 과목을 보강하라는 조언은 이렇듯 별다른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휴학은 임신·출산을 위한 공백이었을 뿐, 두 생명을 품으면서 부족한 과목까지 보강하는 '기회'를 적어도 나는 살릴 수 없었던 거다. 체념하듯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임신기간- 공부를 시도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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