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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y 31. 2022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아침 6시라니

미라클 모닝과 나의 시간과의 사투

새벽 기상은 내 오랜 루틴 중 하나이다. 4시 30분이면 눈을 떴는데 해가 길어지니 아이들도 점점 늦게 자 최근엔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 3시 36분에 눈을 떴다. 밖은 깜깜했다. 새벽부터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있음을 몸도 기억하나 보다.


어제저녁 먹고 난 후,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 아이들이 오늘 가지고 갈 물병 두 개가 먼저 눈에 띈다. 당장 그릇부터 치우는 게 급선무이다. 비몽사몽 하다 4시부터 그릇 정리를 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기계에 넣으면 안 되는 플라스틱 용기와 대형 프라이팬 , 도마 등은 직접 설거지를 한다. 넣어야 할 그릇보다 더 많아 보인다. 일단 그릇 정리하고, 음식물까지 쓰레기봉투에 넣으니 4시 40분이 좀 넘었다. 미리 설거지를 해두면 좋겠지만, 영 시간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시간이 없다. 어제 뽑아둔 커피도 새벽에 마셨다. ㅠㅠ    


이제 눈 뜨자마자 담가 둔 쌀을 씻는다. 어젯밤 김밥을 싸는데 잡곡이 많아 5살 아이가 먹기엔 씹는데 좀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밥을 많이 먹지 않은 아이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제보다 잡곡을 덜 넣었다. 씻고 난 후 밥솥에 넣었다. 잔멸치를 꺼내고, 미역도 담가 두었다.



대략의 부엌일을 정리하고(물론 아직 반찬을 만들어야 하지만) 아이들 학교 보낼 준비를 한다. 마스크를 꺼낸다. 작은 아이 꺼는 마스크 줄로 미리 준비해둔다. 2개의 물병도 잘 보이는 곳에 둔다. 첫째는 어제 가방을 미리 쌌다. 잠깐의 점검만 하고 지퍼를 잠근다. 충전이 끝난 휴대폰과 휴대폰 가방도 가방에 넣었다. 스마트폰은 무음인지 한 번 더 체크한 후 가방에 넣었다. 입고 갈 옷을 정리한다. 속옷과 양말,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안방에 둔다. 작은 아이 옷을 꺼내려는데 바닥에 벌레가 두 마리 보였다. 붙박이 옷장 안은 어두우니 생긴 것 같다. 얼마 전 옷장 정리할 때도 보지 못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로 검색해 벌레퇴치제를 구입했다. 생각해보니 6월에 장마가 올 수도 있다. 습기 제거와 벌레퇴치에도 신경 써야 할 때가 왔다. 아이들 보내고 나면, 옷을 꺼내 환기를 시켜야겠다.



부엌 탁자에 앉았다. 첫째는 오늘 받아쓰기 시험이 있다. 원래는 수요일인데 선거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으니, 선생님이 화요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주말에 알리미로 온 주간 학습내용을 확인하긴 했는데 깜빡하고 화요일 시험이란 건 얘기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공지해주지 않았다. 이번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알림장도 거의 쓰게 하지 않고, 다음날 중요한 공지사항도 미리 얘기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엄마만이 하나하나 챙겨야만 별 탈없이 지나간다. 선생님이 좀 무섭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아이는 다행히 감정적 동요 없이 적응하며 지낸다. 같은 반 친구 중엔 중간에 선생님 안 바뀌냐며 엄마에게 묻기고 했다지만, 아이는 오로지 로봇에 빠져 그 얘기만 한다. 덕후 아들이라 다행인 건가.



그럼에도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맞지 못하면 슬퍼한다. 그래서 어제는 나와 모의시험을 봤고, 오늘 가기 전 칠판에 초성 퀴즈를 내서 한 번 더 체크하기로 했다. 칠판에 일단 문제를 냈다. 아이가 어려울 만한 부분은 초성으로 기입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제를 풀면서 한 번 더 체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둘째는 오늘 유치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한다. 줌으로 진행되는데 줌 수업 시 학부모님이 종이로 문구를 만들어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응원문구로 만들었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사인펜을 가지고서 이름과 사랑해 글씨를 썼다. 나머지 여백엔 첫째가 로봇을 그린다고 했다. 아침에 잠깐 부탁할 예정이다.



초벌 정리를 해야 아이들 보내고 난 후 청소가 수월해진다


첫째 간식을 깜박했다. 방과 후 돌봄 교실에서 먹은 간식을 찾아봤다. 토스트를 만들려고 하니 오늘은 여력이 없다. 벌써 6시이다. 간식 통을 뒤져 과자를 넣었다. 과자나 빵 말고는 이 계절에 싸줄 게 없다. 사실 계절 탓이 아니라 냉장고에 넣고 빼고 하는 것도 어렵고, 아이가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빵이나 과자 말고는 없다는 게 아쉽다. 다행히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과일 간식이 매주 수요일마다 나온다.



이렇게 다 정리하니 6시가 좀 넘었다.  거실에 장난감들을 대충 정리한다. 다용도실 창으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니 햇빛이 거실로 비춘다. 야행성 사슴벌레 사육장에도 빛이 관통하기 시작한다. 이것도 박스로 막아줘야 할 것 같아서  6시 전후로 빛이 오는 길목을 막고 있다. 이것도 아침에 내가 하는 자잘한 일 중 하나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니 바빴다.



빛을 가려주는 것도 매번 신경 쓰는 일과 중 하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잘 간다. 내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시작한 미라클 모닝. 하지만 절반 이상의 시간은 나에게 쓰이지 않는다. 이마저도 없으면 육아와 집안일로 점철된다. 6시가 좀 넘었으니 이제 1시간 남짓 내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면 좋으려면 아직 미역국과 멸치볶음을 만들지 못했으니 아마도 30분 정도 내 시간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땐 좀 우울하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만 하다가 하루가 가는 게 아닐까 두려워한다. 나의 핵심감정은 역시나 두려움일까. 한 때 나의 핵심감정은 열등감이었는데, 그러다 불안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두려움이 맞나 생각하나 열등감과 불안감, 두려움은 결국 원인이 하나인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불안정한 나의 내면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때 느꼈던, 나의 생존에 위협받고 있다는 감정에서 아직도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두렵고 불안한 게 아닐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명상을 매일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 못했다. 불안은 영혼까지 잠식한다는 영화 제목은 언제나 나의 감정을 관통한다. 놀랍게도 나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 제목 그 자체가 아포리즘처럼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극장 드라마 제목) /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영화 제목) 등)



 것도 없는데, 정확히는 나를 위해  것도 없는데 시간은 잘도 간다. 새벽 시간은 1시간이 10 같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치즈 케이크를   베어 물었을 뿐인데  조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말이다. 시계를 보면 매순간 눈을 의심하게 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없는 시간이다. 새벽 말고는  영혼이 홀로 깨어 유영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또한 절반 이상의 시간은 집안일에 매달리게 된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장을 보고, 간식을 준비하고, 저녁 반찬을 미리 만들어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나는 길게는 2시간가량을 나에게 쓰고 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버티고 있다. 어제는 많이 아이들과 웃지 못해 아쉬웠다. 나의 화가 자꾸 기어 나오는 것 같다. 내 심기가 좋지 않으니 아이들도 심기가 좋지 않은 걸까. 그럼에도 아이들은 다시금 장난을 치고, 같이 놀자고 한다. 다시 정신을 차려 아이들과 논다. 마음이 오락가락하지만, 아이들에게만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고비가 매번 찾아온다. 입꼬리를 올리고 고비를 넘긴다. 그러다 보면 밤이 온다. 아이들이 잘 때 나도 쓰러진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찾아온다.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눈을 뜬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또 시작된다. 단순한 것 같은데 그 안에 자잘하게 준비해야 할 여러 일들이 산재해있다. 이 중 하나가 빠지면 뭔가 탈이 난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흐른다.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글을 쓰는, 단 두 가지에도 몰두하기 힘들지만, 또 그럭저럭 하다 보면 또 하게 된다. 매일매일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내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 것, 나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가고 있는 것. 이런 노력만으로도 나아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지면, 여러 모로 이득이다. 오늘 새벽 기상으로 나는 많은 일들을 했고, 기분이 좋아졌으니 그걸로 족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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