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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n 20. 2024

폭염의 유일한 장점은 빨래 말리기였던가

지구온난화와 빨래의 역학 관계

매일 빨래를 한다. 아침마다 빨래함에 아이들이 허물처럼 벗어놓고 간 옷들을 확인한다. 날이 더워져서일까? 나갔다 오면 바로 벗어 빨래함으로 직행하기 때문에 빨랫감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더불어 매일 2차례 이상 빨래를 하는 것 같다. 수건, 아이들 옷, 나와 남편 옷을 구분해서 세탁기를 돌린다. 이불 살균도 돌려야 한다. 바쁘게 빨래를 돌린다. 다행인 건지(?) 건조기를 돌릴 필요도 없다. 요즘같이 폭염이 시작된 여름이라면 능히 빨래 말리기는 햇볕에 맡기게 된다. 여름옷은 더 얇아 빨래를 널고 나서 2~3시간 안에 다 마르기도 한다. 건조기에 말린 옷은 흐느적대는 느낌이 든다. 대신 햇볕에 말린 옷은 빳빳하게 풀칠해서 말린 것 같아 기분이 더 좋다. 기계의 힘은 위대하지만, 자연의 힘처럼 생동감을 주지 못하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따로 건조기를 두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드럼세탁기에 건조기능을 이용해 빨래를 종종 말렸다. 장마철이나 겨울철, 특히 빨래가 마르지 않을 때. 건조기로 바싹 마른 오징어포처럼 말려서 나온 빨래들은 바로 손을 댈 수 없다. 뜨거운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건조기애창자들이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건조기를 따로 사용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기계의 힘을 놀라울 정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볕에 빨래를 내맡기는 게 좋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광합성을 하고 나면 몸에서 기운이 나는 것처럼 옷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게다가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햇볕으로 제대로 살균된 수건과 옷들이 내게 그 어떤 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다. 무해한 향은 인공적인 아로마향이 주는 골치아픔이 없다. 햇볕에도 향이 있다면, 바싹 바른 빨래에서 맡아지는 이런 무해함이 아닐까. 인도 산간도시에 가면 볕이 좋은 날, 빨래들이 창틀에, 베란다에,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그곳의 옷들은 총천연색에 복잡한 패턴이 많아 빨래들이 바람이 흩날릴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생명이 움트는 현장, 옷에 어떤 기운들이 깃들여져 입는 이의 기분마저 상승시켜 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빨래는 흔한 집안일 중 하나이지만, 폭염의 나날이 지속되면 뭔가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의 옷들이, 아이들의 옷들이, 살아서 꿈틀대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일까.


폭염이 지속되는 날이면, 나는 옷에 깃든 생명의 현장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빨래를 돌리고, 바로바로 말린다. 놀랍게도 폭염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말린 수세미처럼 빳빳하게 굳은 채로 빨래를 걷으면 이들에게 제자리를 바로 찾아주고 싶어졌다. 내복의 경우, 짝을 찾아 돌돌 말려주고, 옷걸이에 걸린 상의들을 옷장으로 바로 넣어준다. 양말들은 간혹 짝을 잃어 배회 중이다. 서랍장을 꺼내 제짝을 찾아주면, 세탁기에서 삐삐~ 소리가 난다. 이어 돌린 빨래가 마무리됐다고 신호를 보내는 세탁기. 10년째 우리 집 빨래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왔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매년 여름마다 더 바쁘게 돌아갔을 것이다.


사실 옷은 그냥 옷일 뿐이고, 빨래라는 그 자체로 대단한 실체를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뽀송뽀송하게 말린 수건으로 내 몸의 물기를 닦아내면서 생각한다. 까슬까슬한 수건이 주는 묘한 쾌감에 대해서. 건조기로 말린 수건은 뭔가 순한 맛이다. 부들부들해서 더 잘 닦이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까칠한 수건이 좋다. 까칠한 내 마음까지 다 닦이는 기분이 드니까. 폭염이 끝나길, 지구 온난화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생각한다. 지구온난화의 유일한 장점은 결국 빨래 말리기구나.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아 전기를 덜 쓰게 될 것이다. 다 마른빨래를 접어 각을 만든다. 탈탈 털어 잘 말리면 다리미도 필요 없다. 볕만 잘 활용하고, 이는 곧 제때 빨래를 잘 마르면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 더불어 더운 여름에 건조된 빨래를 꺼내면서 느꼈던 그 화기와도 같던 뜨거움에서 잠시 나는 놓여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안도감을 느꼈다. 폭염이 끝나길 바라지만, 햇볕은 쨍했으면 좋겠다. 무기력의 파도가 순간순간 덮치는 나의 일상에 광합성은 필수니까. 볕을 받지 않으면 시들해질 나이니까. 빨래를 위해, 나를 위해 햇볕은 쨍쨍 내리쬐면 좋겠다. 다만 폭염은 끝났으면 좋겠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언어도단인가!!!!


창 너머 볕
이제 곧 세탁기로  들어가게 될 빨랫감들
곧 옷장으로 들어가게 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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