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훈 Jul 04. 2024

달리며 금연
(Run to Quit)

담배 생각날 땐 러닝

20년 넘게 피워왔다. 


나도 끊자! 끊을 수 있다! 끊어야 한다! 오늘 밤 10시에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내일부터 금연한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금연에 성공한 한 라디오 진행자는 담배의 노예가 되기 싫어 끊었다고 했다. 단 번에 금연에 성공한 그가 멋있었다. 노예라는 단어가 가슴에 꽂혔다. 나는 노예인가? 노예보다 주인이고 싶다.


오후에 산 담배는 반 갑 정도 남아있다. 내일부터 할 금연을 생각하니 오늘까지는 최대한 많이 피우고 싶었다. 담배맛을 돋우기 위해 오후에 달달한 믹스커피도 여러 잔 마셨다. 집에 귀가해서 저녁식사 후 세 대를 연거푸 피워댔다. 앞으로 10시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세 가치 정도 더 피우면 담배와 이별이다. 


그간 참 질긴 인연이었다.  종일 다른 때보다 더 많이 피웠던 터라 마지막 담배로 생각하고 연거푸 태운 담배맛은 역겨웠다. "이 맛, 이 느낌, 이 역겨움을 잊지 말고 내일부터는 애초부터 담배를 안 피웠던 사람으로 돌아가자." 미련 없이 활활 태우고 남은 담배는 화풀이라도 하듯 잔뜩 구겨서 라이터와 함께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렸다. 


내일부터 담배를 끊겠다는 굳은 마음보다 이제 못 피운다는 서운한 마음을 추스르다 울다 지친 아이처럼 잠이 들었다. 금연이 스트레스였는지 밤새 잠을 설쳤고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새벽이다. 오늘부터는 금연해야 한다. 물부터 한잔 마시고 소파에 앉았다. 


문득 다가올 명절이 생각났다. 곧 추석이다. 기발하다. 이런 생각을 떠 올리다니. 머릿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명절 음식을 즐기고 있는 가족 동영상 한 편이 재생된다. 모든 식구가 함께 모여 음식을 준비하며 낮부터 시작한 반주는 저녁식사가 끝나도 이어진다. 부른 배를 붙잡고 피우는 담배 맛은 정말 구수하다. 


처가에 가면 큰 형님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늘 둘은 식후에 함께 했다. 날짜를 손꼽아보니 지금부터 금연하면 금단 현상이 최고조일 때가 마침 추석이다. 금연은 계획적이어야 실패 확률이 낮아진다. 날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오늘부터 금연하면 가장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술과 담배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솔직히 자신과의 싸움에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 금연을 좀 더 계획적으로 시도하여 멋지게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권하는 형님의 얼굴도 오버랩된다. 형님도 건강상의 이유로 담배를 끊을 이유가 충분한 사람이었지만 아직까지 스모커였다. 그때까지 잘 버틴다 해도 담배의 유혹에 넘어가기 너무나도 쉬운 조건이다. 좀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번은 때가 아니다. 날을 잘못 잡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음 행동은 너무 쉬었다. 어제 담배를 버린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갔다. "설마 담배가 없어지진 않았겠지?" 쓰레기 뒤지는 모습을 누가 볼까 조심스럽게 종량제 봉투 몇 개를 들춰내니 어제 구겨서 버린 담배와 라이터가 그대로 있다. 


지옥 같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물을 털고 구겨진 담뱃갑을 한 가치라도 더 살리고자 조심스럽게 폈다. 다행히 부러지지 않은 담배가 기특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음식쓰레기와 종량제 봉투가 그득한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추석 때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고 그 후에 끊어도 별 문제없다. 


하지만 추석 때 실패한 금연은 1월 1일로 미뤄졌고, 1월 1일에 실패한 금연은 설날로, 설날은 3월 초인 내 생일에 다시 태어나자는 각오와 함께 미뤄졌다. 하지만, 그렇게 실패한 금연을 2012년의 생일인 3월에 시도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담배는 참는 것이라 했던가? 


달리기는 금연에 최고 보조제이다. 강한 흡연 욕구를 잠시 억제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경험 상 10분 정도만 지나면 담배 생각이 확연히 줄어들고 들숨과 날숨에 폐가 필터링 되는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달리는 동안 담배를 잊을 수 있고 뛴 후에 느끼는 개운함과 건강한 느낌은 담배를 멀리하는데 특효약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러한 나의 경험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제법 많았고 최근 2023년에 발표된 논문에서도 450명을 대상으로 금연시도 시 러닝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 능력인 자기효능감을 증진시켜 금연 성공률을 높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보고하였다. (Wierts, 외 2023. Predictors of changes in running and smoking identity among individuals in the Run to Quit smoking cessation program. Psychology of sport and exercise, 67, 102431)


달리기로 깨끗해진 폐를 담배로 다시 더럽히긴 싫다. 세차 후 오염을 피하고 싶은 자동차 오너의 마음이랄까?


담배생각날 땐 러닝을! 

작가의 이전글 앞꿈치 vs 뒤꿈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