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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게 Feb 12. 2018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한 걸까?

결혼하고 보니 '속았다'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우리의 연애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아니 찬란했다고 하면 화려함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 이 말은 취소. 우리의 연애는 지질함의 연속이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여러 번, 고시생의 초조함과 취준생의 예민함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주변에 놀라움과 걱정을 안겨주었다. 누가 봐도 안정되게 잘 사귀는 모양새는 아니었나 보다.

 

잠깐, 얘기에 앞서 혹시나 필자의 말투가 거칠게 느껴져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이건 8년에 걸쳐 혈투에 가까운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어투이니. 평소에도 조급하고, 여성스럽지 않다는 얘길 종종 듣지만 고치기가 쉽지 않다. 웃기는 변명이지만 그래서 결혼은 '좋은 사람'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내 남편이 좋은 사람이 아니란 뜻은 아니지만, 결혼 1년 차에 접어들 '결혼하기 좋은 사람'의 기준과 함께 다음 질문도 고민하게 됐다.

 ‘나...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한 걸까?’

  

연애할 때 좋은 남자는 ‘나를 최고로 아껴주고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란 정의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기 좋은 남자'는 조금 복잡해 보인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건 당연한 거고, 힘들 때 의지가 되도록 능력이 있어야 결혼 상대자로 적합하다고 보통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제일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드는 '대화'다. 결혼생활의 모든 대소사를 이야기할 때 '나와 말이 통하는가?' 즉, 대화가 되느냐는 점이다. '어?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애할 땐 쉽고 당연했던 것이, 결혼을 하면 어렵고 험난해진다. 결혼 후에도 변함없이 내 말에 성실히 귀 기울여주는 친절한 남자는 흔치 않다.


연애할 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맞춰줬던 한 남자가, 결혼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나는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물론 결혼하면 그동안 보지 못한 눈썹 없는 여자에, 생각보다 강력한 방귀 냄새에, 생각보다 맛없는 요리에 연애 때 씐 콩깍지가 벗겨지는 거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도 할 말 많다. 그 남자, 결혼하고 변했다. 이럴 줄 몰랐다. 그 순하고 언성 한번 높일 줄 몰랐던 사람이 작은 일에 윽박지른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상처받는 것이 여자보다 더하다. 연애 때 매일 두세 시간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날 보러 달려왔던 사람이, 집에만 있으면 소파와 한 몸이 된다. 함께 먹고 설거지를 부탁해도 '나중에', 청소를 부탁해도 '있다가', 수건 한 장 개키게 하는 내가 더 고역이다. 그렇게 결혼 후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나니, 왜 그토록 아내들이 남편한테 잔소리 폭격을 날리는지 알 것도 같다.


몸에 안 좋은 자세가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나는 일부러 버리는 즉석식품이 이 사람에겐 좋아하는 음식 1순위란다. 잔소리를 안 하면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는데 부부상담가는 나보고 잔소리를 하지 말란다. 스트레스받으면 명줄 짧아지니 뭘 해도 그냥 내버려 두란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따랐더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결혼 전의 모습만 봐 왔던 나로서는 '속았다'고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글에 과장한 표현도 있고 모든 부부를 대변하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티타임을 자주 가지신다는 '어느 부부의 찻상'

그래서 결혼과 대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사실 결혼 생활의 문제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게 90프로라는 게 내 생각이다. 모든 부부 활동의 90프로도 대화가 차지한다. 그런데 그 대화가 즐겁지 못하다면 이보다 더한 고통이 없다.  

연애는 정말 재미있다. 오직 둘만 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고,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고, 나를 위해 세상이 돌아간다. 연애란 게 그런 거니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게 연애니까.

 

살아오면서 내 말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경청해주고,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리액션을 해 주고, 작은 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고민을 털어놓고, 밤새 대화하고 싶은 그런 사람. 지금 내 옆에서 코 골고 자는, 뜨겁게 연애할 때의 그 남자였다.


 이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늘 피곤하다며 투덜거리는 이 사람에게 뭘 바라겠냐 싶지만,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 항상 너뿐이라고 속삭이며 네가 없으면 안 된다던 그 사람을. 나의 자존감을 하늘 끝까지 끌어올려준 그를 믿고 결혼했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 적응하고 있지만,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은 울적한 밤에 야속한 감정으로 와 닿았다.


물 안 묻게 해준다더니 설거지로 싸울 줄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다면서 머리카락 빠진다고 더럽다니. 나 없인 못 살겠다면서 요리는 내가 해야 한다니.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한다는 사람이 내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대할 줄이야.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건 사랑이라면서 혼수 문제로 바닥이 보이도록 싸우다니. 불꽃같던 사랑은 무던해지고 현실은 살벌하다.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에는 대화라는 설탕이 필수다

무심하게 던진 그의 말 한마디는 더욱 시리다. '얘기 좀 하자' 란 말에 '나중에'라는 그의 대답은 우리의 관계까지 먼 미래로 유예시키는 건 아닐까 두렵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다시 찾은 신혼여행 사진 속 우리는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설레는 기분으로 떠난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예쁜 말로 충실했고 갈등 또한 잠깐의 대화면 충분했다. 여행을 망치지 않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다. 결혼 생활에도 꼭 필요한 노력이다.


뜨거운 연애는 한순간이고 결혼은 영원하다. 결혼생활이 지긋하고 때로 후회가 될 때, 따뜻한 말로 채워진 대화를 시도해보자. 내가 좋은 사람이 돼주면 이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과 함께.



# 더하는 말.


본문의 글 중에는, 저희 부부 이야기가 아닌 것도 있고 과장된 표현도 있으며 모든 부부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고 댓글을 보고 글을 다시 읽으니 오해를 하실 만한 표현이 있는 듯 해요.

결혼했다고 해서 남편들 모두가 180도 바뀌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단지 결혼하면 상대에게 소홀해질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제 남편의 일부 행동을 통해 (약간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부인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묘사하려고 것이 몇몇 독자님들에게 다소 불편함을 드린 것 같아요.

어느 독자님의 표현대로 '여자라면 누구나 푸념처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이

추측과 섣부른 판단이 더해져, 전하려 한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 것 같은 우려도 듭니다.


따뜻하고 화목한 결혼생활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저희 부부도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이 결혼 생활 유지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글을 통해 그 노력의 도구가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답니다.

앞으로 보다 깔끔하고 양질의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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