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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게 Nov 26. 2021

2회 차의 사랑 방식

  결혼을 앞두고 갈등이 여러 모습으로 변주될 때, 그 갈등은 결혼 후에도 계속될 거란 생각이 들 때, 참을 수 없는 그의 단점이나 불리한 상황들이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 우리가 함께할 결혼 생활이 과연 해피엔딩일 수 있을지 불안해진다.  


 두 번째 결혼을 준비하는 요즘, 전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돌아본다. 그와 무수히 쌓인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원하는 만큼 해소하고, 꽃길을 걷기란 불가능했다. 공존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이해하거나 포기하는 수밖에. 인간에 대한 포기를 받아들일 수도, 완전한 이해도 버거웠던 난 밀려드는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 연애 때부터 '언젠가 우리는 부정적인 관계로 끝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실제로 그렇게 될 힘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불안과 우울, 불행에서 빠져나오기엔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했고 하루에도 감정들을 제대로 다스릴 만큼 어른스럽지도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결혼하면 모든 것이 나아지고 결혼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으니, 현명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자격도, 준비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상대와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어서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 사이의 갈등과 단점들이 야기하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면 결혼율도 확실히 올라갈 텐데. 혼자 사는 외로움보다 함께할 때의 행복을 더 믿고 싶지만, 크고 작은 갈등으로 또다시 되묻는다. 둘이 사는 것이 과연 혼자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까? 나는 여전히 '나'인데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두 번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은 2회 차의 결혼을 결심한 내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식상하고 심플하다. 내 선택을 믿고 싶으니까. 어차피 인생에 정답이 없는 거라면 선택한 것을 정답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뻔하지만 어려운 말을 받아들이는 데 37년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내 연애의 패턴은 늘 비슷했다. 호기심으로 가볍게 시작한 만남은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 거라며 관계를 예쁘게 마무리짓지 못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헤어지면서도 이번에 선택한 남자는 전과 다를 거라 믿으며 또다시 실망하는 관계를 반복했다. 사실 비슷비슷하게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장점을 보지 못하고 작은 단점에 실망하며, 판타지를 꿈꾸던 게 내 사랑 방식이었다.


 그건 20대를 지나 30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 불안, 못 미더움, 초조를 드러낸 말이 씨앗이 되어 내 불안을 먹고 자라 싹을 틔워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잔혹동화를 반복하며, 나를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지 못한 상대를 원망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 남편과 인연을 맺은 십 년의 시간 동안 "지금 많이 힘들고 어렵지만 이 시간들을 참고 버티면 언젠가 우리에게 행복한 날들만 있을 거야."라는 약속의 말을 남발하던 그를 믿었던 내 불행했던 시간들이, 어쩌면 관계를 소중히 대하지 않은 대과거의 인연들에 대한 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판타지를 만들어줄 누군가를 믿기보다 내 힘으로 만들 작고 안온한 세계를 꾸민다. 평온한 관계들이 가진 대화의 힘을 여전히 믿으며, 사랑과 신뢰를 기반한 칭찬과 감사함을 담은 긍정의 씨앗을 매일 정성껏 뿌린다. 그 말의 씨앗은 내 마음의 밭에 뿌리를 내려 무럭무럭 자라 상대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지금의 나는 20대의 미숙했던 나와도, 30대의 지질했던 나와도 다르다. 폭풍 같던 1회 차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2회 차의 결혼을 비장하게 준비한다. 현재의 내가 비록 최고 버전은 아니지만,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니까. 누군가에겐 최악이었던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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