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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11. 2020

네일아트의 기쁨과 슬픔

알록달록 조약돌 같은 손톱을 좋아해

맨 손톱을 본다. 끝으로 갈수록 붉은 기가 도는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이 된 손톱을 본다. 아- 나는 내 손톱을 알록달록하게 칠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코로나가 2.5단계로 격상되고 집 밖에서 그 어떤 활동도 하지 않은지 열흘이 넘었다. 겨우 좁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채 내 손을 누군가의 손에 온전히 맡기는 네일아트는 꿈도 꾸지 못하는 요즘이다. 덕분에 건강하게 숨 쉬는 맨질 맨질한 손톱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알록달록한 작은 조약돌 같던 지난날의 내 손톱들이 떠오른다.


처음 네일아트를 받은 건 25살이었던가, 크리스마스와 가까웠던 내 생일,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큰 맘먹고 비싼 네일아트를 받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아트를 찾아보고, 아티스트와 시간을 맞춰 예약을 하고, 예약금까지 입금하고선 샵을 찾아갔었다. 좁은 테이블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자 언니는(그녀는 나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일종의 룰이다.) 따뜻한 타올로 손을 감싸주었다. 그런 다음 누군가의 손에 내 손을 온전히 맡기고 두 어시간을 보냈다. 유독 손과 손톱이 작은 터라 원하는 만큼 반짝이는 보석들을 붙이진 못했지만, 작은 손톱 위에 자리 잡은 보석들이 얼마나 어여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집에 오는 내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며, 자취방 엘리베이터며 빛이 있는 곳에 들어설 때면 한껏 신경을 써서 손가락을 펼치고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 뒤로는 꽤나 자주 네일아트를 받으러 갔다. 봄에는 여름을 기다리며 푸른색으로 손톱을 물들였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손톱을 물들였다, 가을에는 어김없이 새빨간 색을 칠했고, 겨울에는 어쩐지 손 끝을 반짝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온기를 전하며, 몇 시간 동안 집중하며, 내 작은 손톱에 붓칠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따뜻하고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인지. 그 몇 시간 동안 잠자코 앉아서 세상만사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집어치우고 겨우 내 손톱 위 붓 자국만 보고 있는 순간이 좋았다. 그 어떤 멋진 작가가 그랬더 랬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하는 시절 있는 거라고. 네일아트를 받는 그 시간이 딱, 그 문장을 손 끝으로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치여, 일상에 치여 내가 나를 케어해주지 못할 땐 꼭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저 요새 완전 엉망이잖아요. 제 손톱 좀 보세요." 맨 손톱이 '그런 상황'의 표상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된 지금, 웃기게도 엄마 생각을 한다. 우리 엄마는 알록달록 조약돌 같은 내 손톱을 좋아했다. 짙은 초록이든 팝한 파랑이든 진한 빨강이든, 영상 통화를 할 때 슬쩍슬쩍 보이는 내 손톱의 색깔을 그저 예쁘다고 했다. 함께 네일아트를 받으러 가자고 할 때면 엄마처럼 손에 물 묻히는 사람은 못한다고 했다. 그럼 물을 묻히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나의 철없는 반격. 그럼 밥은 누가 하고 청소, 빨래는 누가 하냐고 웃음과 함께 돌아오는 대답. 그 대답에 언제나 힘을 잃는 나였다.


나 아닌 누군가와 대면하여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요즘, 유행이라는 집에서 할 수 있는 네일아트 용품을 잔뜩 사버렸다. 초록, 파랑, 빨강, 손에 딱히 물 묻힐 일 없는 젊은 내가, 취향 껏 산 셀프 네일아트 키트가 오늘 도착했다. 다양한 삶을 살고 있을 고객에게 맞추기 위해 아주 큰 사이즈부터 아주 아주 작은 사이즈까지 일렬로 준비된 키트를 보자니, 또 웃기게도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 손에 붙여도 분명 알록달록한 조약돌 같을 거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알록달록 작은 조약돌보다는 조금 더 크고 투박한 조약돌.


잊지 말고 추석   키트를  들고 가야겠다. 무슨 이런 색을 붙이냐며, 아줌마들은 이런  하는  아니라며 분명히 성을 내겠지만 이번에는 힘을 잃지 말아야지. 엄마도 분명히 그럴 거다.   손에 온전히 조금은 무겁고 많이 따뜻한 손을 맡기고, 세상만사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집어치우고 손톱   자국만  거다. 알록달록 칠해지는 손톱을 내려다보며   끝이 이렇게 어여쁠 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기도  거다.  손으로 어떻게 쌀을 씻을까 잠시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중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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