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아이스커피와 달밤 댄싱”
“한국에 가서 먹을 것 1. 아아”
튀니지에서 1년을 보내며 가장 몰두한 일들 중 하나는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에 돌아가면 먹을 먹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 1번은 더 어처구니없게도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국토의 40%가 사하라 사막인 아프리카 나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다니? 테이크 아웃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1교시 출석이 불가능했던 나에게 이건 정말이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튀니지는 100년 가까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불어를 공용어로 쓸 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가 유럽식이다. 더구나 지리적으로도 이탈리아 바로 아래 위치해있다. '다리는 아프리카, 가슴은 아랍, 머리는 유럽을 향한 나라'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말이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 스타벅스가 처음 들어선다고 했을 때 프랑스 미디어는 입을 모아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카페 문화(세상에나 커피에 얼음을 넣어 먹는다고?)를 비판했다고 한다. 실제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고서야 현지 카페 메뉴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했으니 튀니지의 카페 문화는 유럽과 동일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유럽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이 멋진 아프리카 나라에 첫 발을 내디딘 계절은 봄. 그 봄 내내 나는 튀니지의 프랑스 식 카페 문화를 진심으로 즐겼다.
주로 평일 점심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과 따끈한 뱅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 반죽 중간에 초콜릿 조각을 넣어 만든 프랑스 페이스트리)를 먹었는데 한화로 천원도 안 했던 우리 동네 작은 카페의 뱅 오 쇼콜라는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빵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그 왁자지껄한 카페, 사람들 머리 머리 사이로 받아 든 따끈한 빵의 촉감과 풍미가 오감으로 느껴진다.
따뜻한 접시, 바삭하고 부드러운 빵, 버터 냄새, 진한 초콜릿의 맛. 내 하루가, 내 가슴이 빵 반죽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주는 맛이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어느 영화의 제목이 단 하나의 음식이라면 그 뱅 오 쇼콜라 한 접시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빵, 버터, 초콜릿 그리고 뜨거운 에스프레소 수십 잔과 함께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최고 기온이 40도를 가뿐하게 넘어가는 여름은 그야말로 아프리카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모래 냄새가 나는 텁텁한 사막의 바람을 삼켜낼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절실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락(Berges du Lac)이라는 동네를 다녔다.
락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투자해서 지은 동네인데-대사관들이 많이 몰려있는 한남동 같은-부유한 외국인들의 동네였다. 나 같이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에 길들여진 외국인들의 동네라서였는지 맛이야 어쨌든 아이스커피 메뉴가 있는 카페들이 꽤 있었다.
태어나서 본 외국인이라고는 나뿐인, 현지인 밖에 없는, 옆 옆 집 마당에서 양을 키우는, 흙먼지가 날리는 우리 동네를 벗어나 가본 '락'은 신세계였다.
삐까번쩍한 볼링장이 있는 부자 동네의 카페에서 몇 달만에 처음 본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모카’ ‘캬라멜 프라푸치노’는 센세이션이었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마음이 그런 것이었을까. (유레카!)
뜨겁지만 건조한, 그래서 얼굴에 닿는 밤바람이 기분 좋은 튀니지의 여름밤. 택시 원정을 온 옆동네에서 특별식인 아메리칸 수제버거를 먹고 밍밍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거닐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가벼워졌다.
여름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청명한 지중해식 기후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튀니지가 낯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낯선 동네에서 달밤 댄싱을 췄다.
"오랜만이죠. 이 시원한 저녁. 아무 생각하지 않을래요. 오늘은 행복했으니 아마 며칠쯤은 더 견뎌 볼 수도 있어 나. 댄싱 댄싱 댄싱 야이야 아 야이야 아. 달의 끝까지. 우리 춤을 춰요 야아 야이야 아. 이토록 반짝이는 달밤의 댄싱!" [프롬(Fromm) - 달밤 댄싱, MoonBow]
오늘은 많이 행복했으니 아마 며칠쯤은, 아이스커피가 없는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 나라의 여름을 견뎌 볼 수 있겠다 하며 달밤 댄싱을 추던 여름밤이었다.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아프리카 나라,
튀니지에서의 추억이 더 궁금하다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