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겪으며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책상 침대를 반복하는 루틴에서 잠시 벗어나 어쩐지 리프레시된 기분이 좋았다. 퇴근길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나 배달 앱을 킨 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웅성이는 소음 속에 들은 키워드는 “장애인” “시위” “지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시라." 안내 방송을 듣고 든 생각을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구나’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 그렇구나. 그럼 음식은 좀 더 나중에 시켜야겠다’
원래 퇴근길 2호선은 늘 숨이 막히는 지옥철이다. 다만 평소보다 탑승 대기 줄이 조금 더 길었고, 평소보다 사람들 표정이 더 지쳐 보였다. 평소보다 3개의 지하철을 더 보내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갑갑하게 몇 정거장 이동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백팩 사이에 머리가 낀 채로 생각했다. ‘와 진짜 불편하다’. 정차하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이미 저리 흔들리는 몸을 자유의지로 움직이길 포기하며 생각했다. ‘와 진짜 짜증 난다’. 이 정도면 한계치일 법 한데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몸에 눌리고, 발을 밟히고, 어깨를 무심히 치는 또 다른 어깨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와 진짜 화난다’.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을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 이 시간에 시위 정말 잘했다!’였다.
왜냐면 한 하루의 퇴근길, 겨우 30분인 시간 동안 내가 정말 불편하고, 짜증 나고, 화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도 무명한 튀니지라는 낯선 나라에 1년 살면서, 낯설었지만 이해하게 된 것들이 많다. 그 중에는 무서워했지만 사랑하게 된 고양이도 있지만,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섞인 고함과 형형색색의 피켓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파업과 시위도 있다.
튀니지에서는 시위와 파업이 빈번하다. 오랜 기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며 가장 잘 못 배운 것이 ‘파업 문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프랑스만큼이나 파업/시위에 대해 열린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튀니지를 아랍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로 만든 재스민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 중, 총 파업과 전국 각지의 무수히 다양한 시위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할 정도이다.
튀니지에 머문 1년동안 근무자가 몇 안 되는 튀니지 동네 마트에서 파업을 해서 40도가 넘는 여름날 옆 동네까지 장을 보러 간 작은 해프닝부터, 선생님들이 모두 총파업에 참여한 큰 해프닝까지 겪으며 ‘파업/시위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은 ‘파업 방학’이 선포된 날이었다.
1교시에 선생님이 들어오시지 않았고, 반은 수다를 떨고 반은 걱정하며 자리를 지켰다. 2교시가 되자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을 한 층에 모은 뒤 교사 총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음을 밝혔다. 바뀐 정부의 정책이 어떤 점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그래서 선생님들은 현재 얼마나 짜증이 나고 분노하는지. 그래서 어떤 걸 개선 요구하기 위해 파업을 결정했는지. 문법을 정확하게 지킨 표준 아랍어로 느리고, 또박또박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선포된 파업 방학!
“자. 그럼 지금부터 일주일 간 '파업 방학'입니다!”
‘파업 방학’이라니?
여름/겨울 방학 밖에 없는 한국과 달리 온갖 이유로 바캉스(방학)가 있는 외국이라지만 ‘파업 방학’은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처럼 어리둥절한 케이스부터,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쿨하게 자리를 뜨는 케이스까지 학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10년 전의 기억이지만 아마도 그때 학비가 아깝다며, 또 파업이냐며 투덜거린 건 한국 학생들 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우리 지금 트램 타고 바닷가 갈래?” 제안하는 이탈리아 친구의 여유로운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튀니지에서 이 일이 있기 몇 년 전, 90세가 넘은 프랑스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라고 소리쳤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아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파업 방학’을 겪으며 나는 영어, 불어, 아랍어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쓰고, 교육학을 전공한 석학이며,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온 학생과 소통하기 위해 제5 공화국 시절의 대한민국 역사까지 따로 공부한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마음이 불편했고, 짜증 났고, 화가 났다.
‘지하철 시위’를 겪으며 나는 장애인들이 이 계단을 마주할 때, 이 인파 속에서 헤맬 때, 이 소음 속에서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할 때 어떨지 ‘처음’ 생각해보았다. 나는 굽이 조금 더 높은 구두만 신고 나와도 하루가 훨씬 더 고단한데. 지금 이 30분도 이렇게 불편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데. 매일 나보다 수십 분을 더 일찍 집을 나섰을 아침과, 나보다 몇 개의 지하철을 더 지나 보냈을 저녁을 생각하며 마음이 불편했고, 짜증 났고, 화가 났다.
부끄럽지만 나는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이 어떤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내가 분노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의무와 권리가 소중한 만큼 그래서 지키고 싶은 행복이 소중한 만큼,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행사하는 의무과 권리를 존중하고 응원하고 싶다.
존경하는 선생님을 위해서, 마디 마디 안 아픈 곳이 없는 우리 할머니를 위해서, 작고 연약한 4살 조카를 위해서, 생명 하나의 무게를 더 지고 있는 내 친구를 위해서,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언제고 어디가 불편하고 짜증 나고 화 날 수 있는 미래의 나와 그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