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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주 Jan 13. 2024

놀이터에서 놀아보지 못했다고?

프롤로그, 놀이터에 대한 관심의 시작

어린 시절 놀이터는 나에게 흙을 매만지며 마음의 안식을 주던 곳으로 기억이 남는다. 유난히 내성적이고 겁이 많았던 나는 놀이터에 있는 기구들을 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로 할머니와 함께 놀이터를 갔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곳은 네가 무언가를 하기에 위험한 곳이야.”라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사실 너무 흔하게 아이들이라면 경험했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린 기억들이 나에게는 전무하다. 그저 그네를 타고 두꺼비집을 만들며 스스로의 세상 속에서 할머니와 함께 대화했던 지난날을 돌이키면 용기 내서 놀이터 안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때문이었을까?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은 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적응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때의 옷차림이 기억에 남는데, 파란색 원피스와 흰색 레이스 양말과 리본이 달린 검정 구두를 신고 등교를 했다. 그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엄마가 우산도 함께 챙겨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 C와 함께 하교를 했다. 장대비가 주룩주룩 왔기에 하굣길은 만만치 않았다. C가 길을 가다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너 여기 물웅덩이에 들어가. 네가 들어가면 나도 들어갈게, 빨리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들어가 봐."


어린아이가 들어가기에는 정강이까지 올라가는 깊이였다. 사실 나는 너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를 짜증 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고민이 왔다 갔다 거렸지만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그냥 들어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에도 C는 내가 물웅덩이에 들어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명령을 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C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웅덩이가 싫었고 빨리 나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짜증 나게 왜 내 말 안 들어!!!"


라고 하며 C는 나를 물웅덩이로 밀쳤다. 내 온몸은 아주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새하얀 양말은 결국 검게 변했다. 뒤집어진 우산과 비에 젖은 내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이렇듯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은 대략 25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눈오는 날의 그네 (스웨덴, Boras)


지나고 나서 그 상황을 돌아보니 그 친구 때문이라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며 다투고 싸워보지 못한 채로 발달과정을 거친 스스로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덕분에 그날 이후로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를 타며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노는 법을 익혔다. 무더운 여름날 아무도 없는 놀이터 주변의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서 맛도 보고, 돌로 짓이겨 색도 만들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사소한 기억들은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려준다. 아마도 놀이터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놀이터에 대한 결핍을 채우기에 스스로 전 세계로 발걸음을 나섰던 마음들이 담겨있다. 앞으로 놀이터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담긴 글들을 쓰게 될 텐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켜주는 매개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


사람의 성숙한 지의 여부는 그 사람이 어릴 때 놀이에 얼마나 진중하게 임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Friedrich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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