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레지던시 그 후
요즘은 지금껏 열심히 해왔던 다양한 일들에 대해 한 발자국 물러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 매번 개근상을 받으며 좋아했던 지난날의 습관은 나이가 들어도 무섭게도 온몸에 배어있었다. '나는 쉬고 있어.'라고 말만 하지 제대로 쉬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너무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숨 가쁘게 달려가던 일상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 보려 한다.
아마 이렇게 다짐할 수 있었던 계기는 2월에 일본 이토시마현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다녀온 덕분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과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홀로 떨어져 작업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돌아보니 세상에서 말하는 대단한 것들은 하나도 없더라. 하염없이 배추밭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고,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슈퍼마켓을 다녀온 스스로를 칭찬하고, 레지던시 동료들과 일본 음식을 만들어먹고, 온천에 가서 할머니들과 노천탕에 앉아 영혼의 대화를 함께하고, 작은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필사하고, 찬 공기가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저녁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고 등등.
그렇게 스스로의 취향을 알게 되면서 '어떤 일을 할까가 아닌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췄다. 정말이지 소박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만족해하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스레 기존에 하고 싶었던 것들,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된다. 남들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것들은 나에게는 가장 귀중한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 어디에 있던지 나를 기쁘게 해 주었던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잊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더 많이 비워내고 물러나고 버려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엄마가 말해주었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천천히 내 길을 가자고 다짐하는 하루들을 쌓아가자.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