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주 Oct 15. 2024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바라보며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자의 축배


이십 대의 나는 책을 구매하는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로운 편이었다. 먼저 도서관에서 두세 번 읽어보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생각나면 구매했다. 물론 글을 잘 읽는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순전히 나와 작가의 세계가 잘 맞아야 한다는 취향의 이유도 있었고, 돈 없던 대학 시절 원하는 책들을 마음대로 구매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턱 끝까지 감정이 차올라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었던 건 다름 아닌 한강 작가의 책들의 문장이었다.


‘흰’의 문장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주인공이 등장해 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 지난 역사 속에 투쟁이라는 단어를 끌어안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밑바닥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쓸 수 있는 문체들은 심장을 쿵쾅쿵쾅 울리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각 작품마다 역사에 기반한 평범한 사람들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인간 존재의 고통과 상처, 폭력성, 그리고 생명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꾹꾹 눌러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흰 것들을 의 이야기를 담은 '흰'과 화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바람이 분다, 가라'를 가장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 두 책이 자주 손이 간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책들은 하루하루 나를 숨 쉬게끔 했다. 기질상 지금도 나는 자주 슬픔을 느끼는 편이라 한강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 마치 그런 존재가 소중하다는 증명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강 작가의 문장들에 마음껏 취해있을 수 있었던 지난 시절이 있었기에 슬픔이 다가와도 언제든 다시 두 발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소중한 초판 인쇄본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예술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화할 것이라 예상된다. 어두움, 슬픔, 고통의 깊이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이해받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래도 이 생각을 당분간 믿어볼 예정이다. 나와 타인의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기대를 말이다.



-


팔복(八福)

                                 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말했지, 속도보다는 방향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