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조만간 지울 나의 마음속 이야기
이 글은 아마 창피함을 견디지 못하고 수일내로 지워질 것 같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친구가 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매일 같이 노는 단짝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와 친해진 계기가 신기한데, 걔는 정말 멋진 여자애라서 친구를 아직 못 사귄 나에게 와서 손을 내밀어주었고 기꺼이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통통했고 별로 예쁘지 않았고, 공부야 초등학생들이니까 거기서 거기고 뭐 하나라도 잘난 게 없었는데 그애는 정말 예쁘고 인기도 많아서 나 말고도 친구하겠다는 애들이 줄을 서있었다. 그런데 왜 날...?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걸 좀 물어보고 싶긴 하다.
초등학교 4학년쯤 그애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는 더이상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어른들은 정확한 병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알려줬는데 내가 못 알아들은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처음에는 감기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백혈병, 암, 종양 그런 단어들이 오고갔던 것 같은데 최종적인 목적지가 뭐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불안하고 걱정될 때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엄마에게 친구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차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했다. 좋은 얘기가 아니니까, 아마 버거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열한살이었던 나에게는 그 단어들이 혼자 감당하기엔 훨씬 더 크고 무거웠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한번은 병문안을 갔는데 아주 크고 높은 건물이었다. 아산병원이었다. 친구의 몸에 많은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친구야,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제대로 응원을 해줬는지 기억이 안나고, 슬며시 병실 바깥으로 나갔던 것 같다. 나는 그때의 내 비겁한 모습을 정말이지 기억에서 지우고싶다.
입원중일 때 친구는 나보고 온라인 게임을 같이 하자고 자주 졸랐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될 나는 학원 숙제가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학교에 딱히 이렇다할 절친이 따로 생긴 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새 친구를 사귀고 싶지도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그 당시에는 소위 단짝친구라는 건 평생 가야한다는 개념이 아이들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러니까 내 단짝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다만 자주 못본다고 해서 새로운 친구를 만든다는 게 일종의 배신이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마음이 동하는 친구는 없었다.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나를 왕따시킨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 좋은 친구들이었고, 예전에 비해 다소 조용해진 나를 끼워서 여기저기 다녀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중학생이 됐고, 그애는 중학생이 되지 못했다. 그해 가을, 나의 단짝은 사라졌다. 단짝의 마지막 배웅을 하고 싶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런 곳에 가면 안된다고 나를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방안에 동그랗게 웅크린채 마음으로 친구를 배웅했다. 자고 일어났을 때는 어제 일이 긴가민가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친구에게서 답이 없었다.
그후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는 대폭 감소했다. 왜냐하면... 관계의 상실은 나를 처절하게 슬프고 공허하고 외롭게 만든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이토록 어려운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나는 가끔 걔가 살아있는 걸로 착각하고 문자를 보내려다 멈추곤 했다. 내 안에 있던 어떤 세상이 그때 무너졌다.
나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추론능력은 가지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나는 성적이 꽤 좋았는데, 기본적으로 공부가 싫지 않기도 했지만 (공부는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타고나길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있을 때 느끼는 해방감에 취한 게 가장 컸다. 문제를 푸는 동안은 그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저편으로 미뤄둘 수 있을 만큼. 하지만 우울증이 심해져서 고3 수능을 망쳤고, 재수는 성공했다.
지금도 나는 누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아산병원이 떠오른다. 그러고는 두려워진다. 그래서 친구를 만드는 게 버겁고, 거리감이 유지되는 지인 정도로 남겨두려는, 정말이지 모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거리감을 유지한다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거리감은 계속 좁혀진다. 그리고 만약 내가 가까운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면, 거리감은 극단적으로 멀어져서 관계는 결국 소멸한다.
처음 학생신분을 벗어나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좋았던 건 공적인 관계들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다보니 사람들은 서로 사적인 꽤 관계도 맺었다. 그러다간 틀어지고, 다시 화해를 하는 식으로 관계를 지속해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나는 그게 몹시 공포스럽고 긴장됐다. 그냥 각자 일만 하면 안되나..?
그와중에 방송국에서 잠깐 일을 했었다. 그 업계를 묶어서 욕할 생각은 없다. 진리의 팀바팀이니까. 하지만 내가 소속된 팀에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고, 그 수십명 가운데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거기서 정말 우연히 친구가된 동료 한명 빼고는 단 한명도 없었다. 지독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나는 이제 아예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싫어졌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로봇같아" 나는 그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큐멘터리 PD를 하고 싶다던 꿈도 접었다. PD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
그곳을 관두고 개발을 공부한 건, 이 업계에는 존중과 수평문화가 자리잡아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해본 개발은 적성에 잘 맞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만약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끝끝내 이 일을 했을 것이다. 나는 학구적인 사람들과 함께 서로 존중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직을 했는데,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갖지 않은 장점들을 가지고 훨훨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말한마디 꺼내는 게 어려운데, 그들은 부드럽게 입을 연다. 나는 실수할까봐 긴장하고 전전긍긍하는데, 그들은 실수(도 잘 안하고) 하더라도 또 유연하게 상황을 극복한다.
인간관계와 상황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이 사람들이 참 부럽고, 그들은 행복해보인다. 그들은 따스하다. 나도 따스하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고 싶은데, 내 안의 뭔가가 덜컥거리며 가로막는다.
나도 저렇게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내가 인간관계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내가 편안할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그냥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마음은 편한데 장기적으로도 좋은 건지,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혼란스럽다. 나는 아직도 주니어 개발자이고 공부할 것이 한참 많은데 이런 고민에 빠져서 퇴근 후의 소중한 시간들을 천장을 바라보며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불면증이 심해져서 최근 상담을 받으러갔는데, 눈물이 계속 나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딱히 우울증 때문에 간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울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뭘 하려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
나의 이 혼란스러운 시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공부에도 집중하고 싶고, 업무 성과에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평화를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