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일
간호사의 교대근무 시간은 다들 비슷하다. 오전 근무는 7시 전후로 30분부터 3시~4시까지. 오후 근무는 대략 1시 30분~2시 정도부터 9시 30분~10시까지. 밤근무는 9시 30분~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30분~8시까지. 나는 늘 교대근무에서 벗어나 보통의 회사원처럼 상근으로 일하고 싶었다. 나인 투 식스로.
교대근무에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상근을 직접 해보고 나서 알았다. 상근에는 꽤나 불편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이날 반차 쓸게요."
"안 돼. 월요일 오후잖아. 바쁠 거야. 다른 날 써."
대차게 까였다. 사실 월요일에 항상 바빴던 건 아니라 말한 건데 단번에 거절당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또 예약날짜를 변경해야 한다.
그 전날 나는 다급히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까맣게 잊어버린 채 집에 와 버렸기 때문이다. 일곱 시까지 하는데 그때 시각은 6시 30분. 틀려먹었다.
전화를 걸어 직원과 소통을 통해 어렵게 예약날짜를 조율했다. 웬만하면 여섯 시로 예약해서 끝나자마자 가려했는데(직원분이 여섯 시 넘어서 올 것 같다고 하니 일단 여섯 시로 잡아놓고 끝나는 대로 오라 하셨다.) 여섯 시 예약되는 날이 이젠 10월 중순으로 넘어가버려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반차를 쓰기로 하고 화요일로 잡았는데 전화를 끊고 보니 화요일은 다른 선생님이 반차를 썼고 수요일은 수선생님이 연차다. 목요일은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안 된다. 그래서 월요일로 한 건데 다시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고 반차를 못 쓰게 되어 6시에 되는 날로 잡아달라고 했다.
전에 다니던 병원이 국군의 날에 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 걸. 오늘 올 수 있냐고 하는 것이다. 나는 화색이 돌아 "네! 오늘 갈게요!" 하고 대답했다.
하, 정말 병원 한 번 가기 쉽지 않네.
반차 하나를 써도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어볼 것 같아서 미리 핑계를 준비했었다.
치과를 가야 한다는 이유를 대기로 했다.
정신과를 가야 하는데 예약하고 가야 하는 곳이라 시간이 그때밖에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사유였다.
말하게 되면 실토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싫었다.
아무튼 직원분의 배려 덕분에 병원은 잘 갔다 올 수 있었다. 감사했다.
이번에는 한 달 전에 추가한 폭세틴 캡슐 용량을 늘렸다. 월경 전 불쾌감이나 식욕 감소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일단 올려보고 나머지 두 약을 서서히 줄여나가 볼 계획이라 하셨다.
위장약이나 통증약 같았으면 며칠 안 먹어도 됐을 테지만, 이 약은 그럴 수가 없는 약이기 때문에 나도 안 하던 노력을 하고 있다. 하루는 괜찮아도 며칠을 안 먹으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니까.
교대근무 할 때는 이런 어려움이 없었다. 오전 근무면 끝나고 가면 되고 오후 근무면 아침에 가면 된다.
밤 근무면 아무 때나 가면 되고. 그런데 상근을 하다 보니, 게다가 주 6일이라 토요일까지 하다 보니 병원 시간이랑 딱 겹쳐버려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참, 불편하다.
몸 망가지는 교대근무가 싫기만 했는데 모든 것에는 역시 장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교대근무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 기존 반차를 취소하고 10월 예약날로 다시 제출했다. 휴우. 다음번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