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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Jul 19. 2023

04. 노을과 오토바이

술 마시고 비틀거려도 오토바이는 간다.

할머니와 나, 여동생과 할아버지가 자는 안방은 들어오는 미닫이 문이 있는 벽과 문의 오른쪽에 붙박이장이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두 벽에 큰 창이 있었다. 붙박이장 맞은 편 창은 마당 쪽으로 나 있었는데 창과 벽 사이에 창 높이까지 턱이 있었는데 그 턱이 있는 공간이 꽤 넓어서 그 곳에 들어가서 놀곤 했다. 들어오는 문 맞은 편은 할머니의 창고 쪽으로 나 있었다. 두 창이 모두 큰 창이었음에도 커튼을 하는 법이 없던 할머니 집에서는 햇빛이 가득 방안으로 쏟아졌다.


눈이 부셔서 눈을 뜨는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미 물질 준비를 다 마치고 할머니가 바다가 나가버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평화로움이 주는 불안함에 나는 자고 있는 동생을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갔다. 할머니는 우산형태의 식탁보 아래 할머니가 돌아오기까지 우리가 먹을 김밥을 싸놓고 갔다. 김밥이라고 해봤자 계란과 씻은 김치가 전부였다. 나는 김밥을 하나 집어 먹고는 혹시나 할머니가 있을까봐 부엌에 연결된 화장실도 살펴보고 부엌 문으로 나가면 우측에 보이는 할머니의 창고도 살폈다. 할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면 괜히 눈물이 났다. 혹여나 바다가 우리 할머니를 삼켜버리는 건 아닐까하고 할머니가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외우는 기도를 마음 속으로 따라하기도 했다.


욕심 내지 않게 해줍써. 물숨 먹지 않게 해줍써. 포기하게 해줍써.


해녀들에게는 물숨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남아있는 숨의 한계로 나가야할 때 더 큰 전복을 발견하고는 욕심내서 따려고 들어가면 물숨에 잡아 먹힌다고 했다. 숨이 남은 만큼만 체력이 다하는 만큼만 바다가 허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락한 것 이상을 우리 할머니는 본인이 욕심낼까봐 바다보다 본인이 늘 두려웠기에 향을 피우고 마음을 다스렸던 것 아니였을까.


내가 일어났을 때 이미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점심 때 쯤 친구 한 분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밥에서 일부를 우리에게 챙겨주고  나머지를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먹었다. 다 마신 후에 친구와 금능리 마을회관에 게이트볼을 치러 갔다. 할아버지가 친구와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여동생과 세계 명작동화 비디오를 보던지 마당에서 자전거를 탔다. 그 마저도 심심할 때엔 우엉팟 대추나무에 올라가 대추를 따고 그 대추를 가지고 할머니 부엌으로 돌아와 냄비에 놓고 밥 만들기 놀이를 하기도 했고, 옥상에 올라가서 지붕에 앉아보기도 했다. 옆 집에 나와 동갑내기 여자아이 '진이'가 남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자주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맡겨져 지내곤 했는데 진이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진이네 집에 여동생과 함께 가서 놀았다. 진이는 나와 다르게 어린 나이에도 한글을 곧잘 읽었고 자기 이름을 쓸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진이가 자기 이름을 쓰는 것을 보고는 ㄱ도 몰라서 책도 거꾸로 놓고 읽는 체 하는 나에게 이름을 써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곤 했다. 나는 늘 몰라~하고 줄행랑쳤는데  물질하고 돌아온 할머니에게 늘 정민이 저거 멍챙이라며, 저 멍챙이 어디다 써먹냐고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더 얹어서 두고보라며 정민이는 저거 마빡이 튀어나온 것이 분명 한 가닥할거라며 더 무리한 기대를 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술을 신나게 마시다가도 저녁 노을이 생기기 직전 보라색과 파랑색의 하늘색깔이 되면 할머니를 데리러 가기위해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놀고 있는 우리를 찾아서 여동생에게 앞쪽에 태우곤 오토바이 손잡이를 꼬옥 잡으라고 했고 나에게는 뒤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꼬옥 안으라고 했다. 떨어지면 진짜 멍챙이가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함께했기에 이미 멍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더 멍챙이가 될 순 없다며 작은 손 끝이 하얗게 되도록 할아버지의 허리를 꽈악 안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얕은 언덕을 내려가면 항구가 있는 바다였다. 그 곳에는 돌을 쌓아 만들어진 해녀 탈의장이 있었다. 할머니를 데리러 가면 할아버지는 멀찍이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해녀들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 탈의장에 들어가서 할머니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탈의장 쪽으로 갈 수록 비릿한 바다 냄새와 대중 목욕탕에서 날 듯한 샴푸와 비누 냄새가 입구에서 풍겨져 나왔다. 처음 탈의장에 들어가면 뿌연 연기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뿌연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축 쳐진 젖가슴을 내밀고 팬티만 입은채로 가운데에 불을 피워놓고 빙둘러앉아 추운 몸을 뎁히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나는 빠르게 우리 할머니를 찾아 스캔했다. 전부 빠글빠글한 짧은 파마머리여도 얼굴이 제각기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할머니를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다른 할머니가 우측으로 돌면 있는 샤워장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 양, 선자 성님. 손지들 왔수다.

- 무신거?

- 손지들 와서~

- 오게 알았져. 정민아 수민아 거기 이시라이 할머니 씻엄져.


나와 수민이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끄덕거렸다. 우리가 쭈뼛쭈뼛 서 있으면 손을 내밀어 우리 손을 잡고 옆에 앉히는 쪼글쪼글한 손이 항상 있었다.


- 춥지이? 이디 앉앙 할머니 기다렴시라 할머니 곧 나올거여. 구쟁기 하나 먹잰? 먹어져?

- (절레절레)

- 게믄 무신거 먹잰? 성게 하나 까주카?

- (절레절레)

- 아이고 성님, 손지들 굶엉 죽으켄 햄수다.


아니 저기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어요.라는 억울함이 생길 새도 없이 여기 저기 할머니들 손에서 우리에게 생소라가 전달되었다. 갓잡은 생소라는 뭘 찍어먹지 않아도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하나 큰 덩어리를 입속에 넣으면 입 속에서 이리 굴리고 저기 굴리다가 씹어서 먹었다. 젤리 같기도 하고 사탕같기도 했다. 앉아서 소라를 작은 이빨로 오독오독 부지런히 씹고 있으면 팬티만 입은 할머니가 나왔다.


- 정민아 수민아 이래 오라. 여기가 할머니 자리여.

- (도도도도)


할머니의 출근 가방은 노랑 콘테나에 어깨끈 용도로 끈 두개가 묶여 있는 백팩이었다. 그 안에는 샤워할 때 쓸 비누며 할머니의 고무 해녀복이며 돌로 엮인 허리띠며 오리발이며 동그라미 모양으로 된 눈과 코를 막는 잠수경이 들어있었다. 힐머니는 우리가 온 것이 마음이 급했는지 뭐 좀 먹고 가라는 다른 할머니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콘테나 안에 물건들을 부랴부랴 정리했다.


- 나 감쪄이 내일 바당에 나가졈신지 들어지믄 골아주라이. 글라. 할아버지 어디샤?

- 밖에

- 오도바이 탕 완?

- 응.

- 이거 싣겅가랜 해사켜.


할머니가 콘테나 백팩을 들고 탈의장 밖으로 나오면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세워놓은 채로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멍하니 보고 있어서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우리가 옆에 온 것을 알았다.


- 양, 이거 싣겅 갑서 나사 정민이영 수민이영 손심엉 따라가쿠다.

- 경허라.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콘테나를 오토바이 뒷 좌석에 싣고 밧줄로 단단하게 묶고는 먼저 출발했다. 할아버지 오토바이가 출발하는 뒷모습을 보았을 때 하늘 색은 분홍색과 노랑색과 주황색으로 가득했다.


- 밥 먹어서?

- 응, 김밥

- 수민이도 많이 먹었지이?

- 응!

- 아니~ 할머니 야이 두 개밖에 안먹언~ 할아버지가 새우깡 사준거만 먹언~

- 메께라. 수민이 너 경 안먹으면 맨날 넘어지매. 넘어지면 무릎 다치고이. 이마 깨지고.

- 맞아!

- 아니야~ 많이 먹었어~ 으앙

- 아이고 울엄샤? 울 일도 하다이. 할머니가 집에 강 수제비 해주카? 국수해주카? 그만 울라게. 먹은 것도 어신 것이 무사 영 힘빠지게 울엄시게.


할아버지가 천천히 갔던 것인지, 아니면 낡은 오토바이가 오래되어서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노을을 보며 집으로 할머니와 수민이와 손 잡고 걷는 동안 우리 눈 앞에는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가 있었다.


- 양, 상은이 아방 수제비 행 먹게!

- 무신거 수제비? 생선 구우라.

- 물질행 온 사람신디 밥도 이거하라 저거하라, 잘도 못됐져. 아무거나 주믄 먹읍써.


집에 오자마자 부엌으로 향하면서 할머니가 메뉴를 물으면 단 한 번도 찬성하지 않으면서 오토바이에서 콘테나를 내려서 빨래줄에 해녀복을 널어주고 물건들을 정리해주는 할아버지와, 궁시렁대면서도 냉동실에서 생선을 찾아서 굽는 할머니 옆에서 나와 여동생은 늘 수제비 반죽을 만들며 깔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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