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자 대만은 벌써 여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아프리카, 대구에서 온 친구가 4월에 이미 한여름의 대구보다 덥다고 했으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될 것이다. 더운 나라는 늘 겨울에만 가봤기 때문에 이번에 대만에서 맞는 여름이 내 생애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터였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더위를 잘 타기도 해서 나름의 대책으로 여름옷을 좀 사기로 했다. 처음에는 타이중의 대표적인 쇼핑거리인 펑지아 야시장과 이종지에에서 옷을 봤는데 취향에 맞지 않아서 방황을 좀 하다가 우연히 동네 옷가게에 정착하게 되었다. 월세를 내거나 생활비를 인출하러 은행에 갈 때 지나치곤 하던 곳이었다.
가게는 오버사이즈 미시 옷을 파는 곳으로 손님들은 대게 통통한 아주머니들이었다. 55사이즈인 나는 그 안에서 꽤 튀는 손님이었지만 내게도 적당히 벙벙하게 입을만한 귀여운 옷들이 많았다. 한 번은 피팅룸에서 옷을 입고 나오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귀엽네. 잘 어울리는걸” 하고 의견을 보태주시기도 했다. 단골이 많은 동네 사랑방 분위기가 있었다.
그해 여름옷을 고른 기준은 이랬다. 귀여울 것(그냥 그런 게 입고 싶었다), 몇 번 세탁기를 돌리면 찢어지더라도 얇고 가볍고 몸에 들러붙지 않는 소재일 것, 웬만하면 검은색이 아닐 것. 그런 기준으로 옷을 고르다 보니 핑크색 반팔 티셔츠, 파란색 체크무늬 원피스, 흰색 칼라가 달린 노란색 셔츠, 네크라인이 갈색 뜨개로 된 빨간색 잔꽃 무늬 셔츠 등이 옷장에 하나둘 걸리게 되었다.
검은색 옷을 피한 데는 사연이 있다. 한국에서 대만으로 올 때 일 년 동안 쓸 짐을 26인치 캐리어 안에 전부 넣어야 하다 보니 옷은 실용도가 높고 레이어드하기 쉬운 것 위주로 고르게 됐다. 그런데 대만에 와서 보니 웬걸. 검은색 카디건, 검은색 뷔스티에 원피스, 검은색 스웨트 셔츠…… 한국에서 날아온 까마귀가 따로 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옷을 겹쳐 입다 보니 어떻게 입어도 검은색이 껴버리게 되었다. 어학당에서 ‘옷장’을 주제로 자유 대화를 나눌 때 “지은은 검은 옷이 많지?”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또 한 번의 여름을 맞았다. 대만에서 입었던 노랗고 빨갛고 파란 옷들을 다시 꺼내 입으니 잠시 대만으로 돌아간 것 같다. 추억은 방울방울. 외국에 나가면 기념으로 옷을 한 벌 사오는 것도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