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썸이 무르익는 시점 타는 뻔한 루트. 늘어나는 텍스트, 시시껄렁한 둘만의 농담, 밤을 지새우는 통화. 돌이켜보면 서로를 알아가는 마지막 관문은 늘 목소리였다. 처음 전화를 걸 때 나는 통화연결음. 그것은 마치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과도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주고받는 것으로 관계에 특별함을 부여하곤 했다.
지금 당장 통화목록만 둘러봐도 그렇다. 스크롤을 내리면 매일 습관처럼 찍히는 이름만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그만큼 친밀하고 내밀한 관계여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지금까지 서로의 목소리를 나눈 이들은 많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의 목소리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가 나눈 이야기, 텍스트, 선물, 그리고 추억…. 그 모든 건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과 식어버린 사랑에 관계없이 언제든 들추어 볼 수 있지만, 목소리만은 왠지 예외의 영역에 있는 듯하다. 한때는 서로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견고히 지키던 것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언제든 전화를 걸면 들을 수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내가 헤어지고 난 뒤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사실도 우리 관계가 끊어졌다는 허망함, 당신의 일상을 알 수 없다는 막막함,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만 다정히 들려주던 당신의 목소리를 더 이상 못 듣는다는 사실이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에 대해 물어봐 주고,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던 당신의 목소리. 여보세요. 그 짧은 음절 하나에 와락 밀려오는 반가움과 안도감. 남이 되면 누릴 수 없는 다정 섞인 목소리가 오늘은 왠지 더 반갑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