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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Feb 03. 2024

헤어지자는 말

 내가 사귀고 있는 사람은 헤어지자는 말을 자주 한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을 때, 한바탕 치고받고 싸울 때, 우리 사이가 냉전에 잠겼을 때. 그는 아주 습관적으로 그만하자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그것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아주 건조하고 냉정하게 말이다.

 헤어지자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보통 아주 부정적일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사귀고 있는 사람이 헤어지자는 말을 자주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들은 분명 다들 한결같이 그런 사람을 왜 만나냐는 물음을 내게 던질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진짜’ 헤어질 거라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썼었지만, 나는 연애엔 어떤 정답도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연애 고민에 대해서 상담을 해오면 나는 웬만하면 최대한 들어주는 편이다. 내가 어떤 결론을 내준다 한들, 그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한들 결국엔 서로 연애를 하는 그 둘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어릴 적부터 일찍 깨달은 탓인지 많은 친구들은 내게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하소연하듯이 쏟아내곤 했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혹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행동을 저질러도 나는 그들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들 눈높이에 맞춰 조언을 해주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과연 ‘정상적인’ 연애가 뭘까?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알콩달콩 깨를 볶는 연애? 큰 소리 내지 않고 한 번도 싸우지 않는 연애? 열정적으로 내 모든 걸 끌어내는 연애? 내가 정상적으로 생각한 것이 어떤 사람에겐 비정상적일 수도 있고, 내가 비정상적으로 생각한 것이 어떤 사람에겐 정상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 모든 건 보편적으로 다수가 많이 행하는 쪽으로 정해지곤 한다. 그러나 연애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둘이 맞다고 하는 쪽으로 열심히 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만하자’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 건 정말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습관적으로 우리의 관계를 저버리는 그에게 항상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잘 생각하고 말해”라며 회유하는 편이다.

 부끄럽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과거엔 나 또한 습관적으로 픽픽 내뱉은 전과가 있기에.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들어서, 아니면 단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짜증 나서, 상대방이 잡아줬으면 하는 치기 어린 마음에, 더 나아가 마지막으로는 ‘진짜’ 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서….

 그는 내가 일부러 상처를 깊게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투로 우리의 끝을 통보하고선 그 말밖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대화를 마음대로 중단한다. 그에게 이별 통보를 들을 때마다의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충격-슬픔-분노-해탈? 지금은 정말 그렇다. 나는 이제 그에게 우리 그만하자는 말을 들어도 예전처럼 와닿지도 않고, 충격적이지도 않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해탈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는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쌩하니 자신의 말만 내뱉고 도망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가라앉은 채 약간의 대화만 해도 물에 빠졌다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자기가 정말 죽을죄를 지었다 사죄하곤 한다.

 내가 그런 그를 받아주는 데엔 비단 한 가지의 이유만 존재하진 않는다. 평소에 그가 내가 그에게 잘해주는 것 그 배로 잘해주는 것, 내가 그를 하대하고 막 대했다는 죄책감, 그의 실언으로 지금까지 잘 쌓아온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 긴 시간 동안 쌓아온 정, 기타 등등….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항상 이별을 번복하는 그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또 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사랑을 이어나가곤 했다.



 그럼에도 이제 더 이상은 이런 부질없는 반복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를 게임에 빗대자면 이제는 정말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온 것이다. 그와 나는 이 빌어먹을 게임에 소중한 생명을 너무 많이 소진했다. 게임은 내가 갖고 있는 생명을 다 쓰면 처음 단계부터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지만. 연애는 사실 둘 다 기억 상실이 걸리지 않는 한 그러기엔 불가능이다.

 지금껏 나는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내 일상을 향유했고, 그가 있는 내 미래를 자주 꿈꾸어 오곤 했다. 그만큼 나는 그에게 나라는 사람의 몫을 많이 건네줬고, 그만큼 그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그를 보며 내 잘못을 반추하는 짓도 그만하고 싶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쌓아온 시간과 추억, 감정, 마음, 글과 문장, 노력, 그 무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로 한 사람에게 다음을 기대한다는 건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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