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굵고 나서 해본 연애들을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아득한 꿈처럼 느껴지곤 한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말투도, 취미도, 성격도 모두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한때는 그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가령 어떤 거리나 장소는 아직까지 내 발길이 닿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눈 이야기나 감정은 시간에 잠긴 채 한데 녹슬고 바스러져서 그와 함께 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사랑했나, 사랑하지 않았나.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냐는 질문을 들으면 의외로 내 입은 쉽게 들썩거리지가 않는다. 그게 사랑이었나 하는 은은한 의문, 내가 그를 사랑했었나? 돌이켜봐도 지금은 모든 의미를 상실해 버린 때늦은 복기.
사랑이란 그래서 어쩌면 가장 밝은 빛을 내며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할 때는 제일 빛이 나지만, 지고 나면 내가 한 게 사랑이었나 하는 씁쓸한 의문을 매번 곱씹게 만들곤 하니까.
사랑했나, 사랑하지 않았나. 사랑에 빠진 내 얼굴은 짐짓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정말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져 행복에 취한 문장이나 글들을 아무렇게나 갈겨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게 사랑을 해본 적이 있냐고 누군가 내게 물어온다면 역설적이게도 난 쉽게 답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연애를 할 때마다 지금 하는 사랑이 부디 마지막 사랑이 되기를 바라고 바라다가 별안간 몇 번이나 끝을 마주했을 때의 절망감과 허무함.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보다 내가 했던 그 사랑에 배신당한 것만 같은 까슬한 뒷맛.
사랑했나, 사랑하지 않았나를 떠나서 난 다시 한번 아무에게나 묻고만 싶다. 사랑이 뭘까요? 대체.